2008/10/11 03:30

35년전 인지과학

이상한 홍준기에서 언급했던 홍준기의 그 글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더 확실한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 생물학적, 생리학적 요인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도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 인간의 '심리' 문제의 원인을 '육체'에서 찾는 것만큼 인간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조작 가능한 기계로서의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인간의 존엄을 유린했는지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통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정신 혹은 심리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정신과 무의식이 어떤 '특정한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 달리 말하면 어떤 특정한 과학체계에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보편자가 아니라 개별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라깡은 과학이나 보편적 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특수성,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주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라깡에게 주체는 근대의식철학에서처럼 과학적 진리, 절대적, 형이상학적 진리를 보증하는 '신적'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다른 이름이다.

(중략)

왜 우리는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학만큼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탐구했던 학문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독자적인 학문으로서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학만큼 우리들의 삶과 학문,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깊은 영향을 끼친 분야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중략)

정신의학이나 심리학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정신의학 분야나 심리학과에서 정신분석학이론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최근에 국내의 정신의학 분야에서도 프로이트가 활용되기 시작했으나 출판된 저작들을 살펴보면 사실 제목만 프로이트이지 내용은 전혀 프로이트와 상관없는 책이 대다수이다. 심리학 분야에서 프로이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구색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몇 페이지 정도 지면을 할애해 도식적으로 소개할 뿐,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심리학 책은 찾아보기힘들다.

 ACT-R이라는 마음의 구조를 설명하는 모형이 있다. 이런 종류의 모형을 인지 아키텍처라고 한다. ACT-R을 돌리면 0.05초 간격으로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변환해서 뽑아낸 뇌 활동 예측(실선)과 fMRI로 촬영한 실제 뇌 활동(점을 연결한 선)을 비교한 그래프이다. 참고로 ACT-R은 1973년부터 개발된 뇌과학과는 전혀 무관한 순수한 심리학적 모형이고 그 시절에 fMRI 따윈 없었다.

Anderson, J. R.,  Finchama, J. M., Qina, Y., & Stoccoa, A. (2008). A central circuit of the mind.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4), 136-143 .

간단히 코멘트.

(1) 마음을 연구하는 것과 뇌를 연구하는 것은 다르지만 마음을 제대로 연구한다면 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2) 1973년은 아직 라캉이 살아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에 이미 격차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3) 언제부터 '철저하다'가 "말도 안되는 '은유'나 늘어놓으면서 사기나 친다"라는 뜻이었지?

(4) 나를 가르친 어느 교수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소리치곤 했다. "지식이 없는 열정은 쓰레기라고!" 백 번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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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PIN 2008/10/11 06:02 # 삭제

    그럼, 뇌를 제대로 연구한다면 마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나요?
  • 아이추판다 2008/10/11 20:19 #

    네. 그래서 뇌와 마음은 동시에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 Semilla 2008/10/11 10:37 #

    -0-;;;;; 이 책, 언제 쓰여진 건가요?????
  • 아이추판다 2008/10/11 20:19 #

    2003년이던가 그렇습니다;;;
  • 어부 2008/10/11 12:02 #

    아니 저런 소리도 했단 말입니까? 진화심리학이 현재 인간의 존엄성을 황폐화한다는 어떤 증거도 못 찾겠는데 말이죠. ^^
  • 아이추판다 2008/10/11 20:20 #

    저런 논법은 창조론자들의 전매특허인데.. 어이가 없어요.
  • 준식이 2008/10/11 12:41 # 삭제

    병 고치는 일에 "사람은 조작할 수 없으니, 얘는 미친 채로 가만히 놔두세요" 하는 내용인가요?
  • 아이추판다 2008/10/11 20:20 #

    뭐, 그런 건 아닌 것 같고요. 솔직히 무슨 소릴 하고 싶은 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 2008/10/11 14:4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이추판다 2008/10/11 20:21 #

    허억..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
  • dPIN 2008/10/11 21:41 # 삭제

    "뇌 MRI 사진으로 지능 예측 가능"이라는 기사를 보니, 미래에는 뇌만 제대로 연구해도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추세라면 심리학도 뇌과학에서 볼 때 현재 프로이트같은 취급 당하는데 35년까지도 걸릴것 같지 않군요.

    그리고 참고로, 윗글에서 "조작 가능한 기계로서의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어쩌구 한 말은 아마 우생학(Eugenics) 에 관련된 이야기일 겁니다.
  • 아이추판다 2008/10/11 22:39 #

    본문의 내용을 읽으셨다면 그런 생각하긴 어려우실텐데요.
  • klutzy 2008/10/12 12:13 # 삭제

    뉴로사이언스는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하나의 방법론이지 심리학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물리학이 화학을 환원한다고 해도 분자 연구는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요.

    더군다나 마음 발달에는 사회적 영향이 크기 때문에 뇌를 파악해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인지과학계에서는 인류학이나 사회학도 같이 참여를 하고 있어요.
  • dPIN 2008/10/12 13:45 # 삭제

    klutzy// 오해하셨군요. 저도 심리학이 사라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추세로 보면 인간의 육체, 즉 뇌를 연구하는 뇌과학과 심리학은 지금보다 더 많은 부분이 중복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학제간 영역은 아닌 듯 싶습니다.

    아이추판다님은 본문에서 인간육체의 영역을 축소하는 정신분석학은 사이비와 같으며, 원래 심리학은 육체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라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여 기까지는 좋은데, 아무래도 글에서 풍기는 (쓰레기운운하는) 냄새가 마치 현재 한국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임상심리학 하시는 분들을 다루는 투와 별반 차이가 없는듯 보여서, 씁쓸한 마음에 댓글을 남겨봤습니다. 물론 여기서 정신과 전문의 같은이는 아이추판다님이고요.

    저와 가까운 이가 임상심리를 전공해서 대충 그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좀 압니다만 (그런데 필드에서는 현재 심리치료에 정신분석도 쓰인다고 하더군요), 결국 이같은 행태는 학문만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8/10/12 14:43 #

    정신분석학 전체가 인간 육체의 영역을 축소하진 않죠. 저건 전적으로 홍준기의 주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해마시길.

    본문에도 썼지만 35년 전에 심리학에서 내놓은 예측이 지금 뇌과학에서 그대로 확인되거든요. 심리학과 뇌과학은 서로 다른 학문이 아니죠. 서로 다른 얘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상에 '뇌과학과'라는 건 없어요. 심리학과 밑에 뇌과학 프로그램이 있죠. 물론 생물학과에도 뇌과학 프로그램이 있지만 초점이 좀 다르죠.
  • Thomist 2008/10/12 17:45 # 삭제

    dPin//한국에 정신분석 수련받은 정신과 닥터들 많이 있습니다.

    읽을만한 글입니다:21세기의 정신분석, 과학인가 철학인가?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Board=0003&para1=35&id=53&BackLink=L3N0eWxlMC9jb250ZW50cy9zZWFyY2hfMDEucGhwP2tleXdvcmQ9x8/B9sf2JlBhZ2U9MQ==

    p.s.>>아이추판다님 '업데이트 프로이트 :: 모듈' 글이 계속 이어진다고 했는데 제가 못 찾은 건지 안보이네요.
  • 아이추판다 2008/10/12 18:24 #

    링크 잘 봤습니다. 업데이트 프로이트는 쓰다보니 반응도 별로 시원찮고 결정적으로 귀찮아서요;;;;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를 보시면 비슷한 얘기가 나와있으니 그쪽을 참조하심이..
  • dPIN 2008/10/13 13:13 # 삭제

    Thomist//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위에서 한 말은 정신분석의 쓰임여부보다는, 한국의 필드에서 "정신과" 전공하신 닥터들이 임상심리하시는 분들을 "주니어"취급하는 편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추판다님의 정신분석 취급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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