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홍준기

라캉주의식 설명법?

알기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프로이트 당시 히스테리자들은 대부분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프로이트가 분석치료했던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 병간호를 오래하면 히스테리에 걸린다'고말하곤 했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이 '특정한' 원인을 찾으려는 사고방식이다. 즉 아버지 병간호라는 원인이 히스테리 발병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직선적 인과론'에 근거한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생각을 비웃으면서 아버지 병간호를 했기 때문에 히스테리자가 된 것이 아니라,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병간호를 한다고 설명했다. 아주 단순한 예이지만 이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한 과학적, 상식적 사고는 어떤 '확실한' '특정한' 원인을 찾기를 원하므로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다가 히스테리에 걸렸다고 말하지만, 정신분석학은 그들이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매력적인 남성'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뒤집어 말한다. 위의 예는 병간호라는 단순한 원인 - 혹은 어떤 다른 '특정한' 원인이라도 마찬가지인데 - 에 의해 쉽게 설명할 수 있다고보았던 히스테리가 사실 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상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문제를 이해하기위해서는 상식적, 과학적 사고가 막연히 가정하는 '직선적 인과론'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글에는 무척 잘못된 점이 많다.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히스테리에 걸리는가 아니면 히스테리 때문에 아버지 병간호를 하는가? 이건 과학적 문제다. 과학적 문제를 과학적 사고로 풀면 안된다고 주장하니 이것부터 잘못이다. 과학적 사고가 '확실하고 특정한 원인'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도 현대 과학의 확률론적 세계관과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다. 게다가 프로이트야말로 실수 하나에도 원인을 일일이 찾아내려고 한 사람인데 도대체 누가 직선적 인과론에 빠져있다는 것인지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그런데 이런 잘못 쯤은 눈감고 넘어갈 수 있다. 나는 관대하다.

댓글 중에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는 주장이나 히스테리가 있어서 아버지 병간호를 했다는 주장이나 그게 그거라는 의견을 주신 분이 많았다. 홍준기가 그만큼만 되었어도 내가 '이상하다'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홍준기가 쓴 문단만 근거로 한다면 프로이트의 주장은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는 주장보다 설명력이 떨어진다.

홍준기는 이 문단에서 제시하는 유일한 사실은 "프로이트 당시 히스테리자들은 대부분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프로이트가 분석치료했던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뿐이다. 홍준기도 그렇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도 그렇지만 여기서 '대부분'이라는 말을 간과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버지 병간호를 하려면 그 이전에 아버지가 병에 걸려야 한다. 병에 걸리지 않은 아버지를 간호할 수는 없다. 따라서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들의 '대부분'이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내려면 먼저 그 이전에 히스테리에 걸린 여성들의 아버지 '대부분'이 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도 병간호에 많은 시간이 필요할 정도의 그런 병에 걸려야 한다.

그렇다면 19세기말~20세기초 비엔나에 살던 결혼적령기 딸을 둔 남성들이 하나같이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누워있었거나 아니면 딸의 히스테리와 아버지의 발병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어야 한다. 당시 비엔나 중년남성의 건강상태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 없지만 아무래도 40~50대 남성들이 하나같이 병석에 누워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남는 가능성은 하나 뿐인데 히스테리와 아버지의 발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벌써 매우 이상하다.

아버지의 발병 때문에 히스테리에 걸렸다고 하면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켰다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그러면 딸의 히스테리 때문에 아버지가 병에 걸렸거나 아니면 제3의 원인이 딸의 히스테리와 아버지의 발병에 관계해야 한다. 그런데 딸의 히스테리 때문에 아버지들이 중병에 걸려 픽픽 쓰러진다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하필 히스테리에만 아버지가 발병하는 것도 이상하고, 어머니는 어쩌고 아버지만 병에 걸리는 것도 이상하다.

제3의 원인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와 딸에게 동시에 전혀 다른 질병을 발병시키는 그런 원인이 뭐가 있을까? 유전이라고 해도 이상하고 환경적 요인에서 찾기에도 이상하다. 아버지와 딸에게는 영향을 미치는데 어머니와 아들에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가장 이상한 건 홍준기다. 히스테리자 대부분이 아버지 병간호에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아버지 병간호가 히스테리를 일으킨다고 말하기엔 증거가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건 아니다. 그런데 홍준기는 영 딴 소릴 하고 있다. 만약 히스테리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 병간호를 했다고 말하려면 당대 비엔나에서는 아버지가 병에 걸려도 딸들이 오랜 기간 병간호 하는 일은 드물었다든지 그런 얘기를하든지 아니면 아버지와 딸이 동시에 다른 병에 걸리는 이상한 현상에 대해 뭔가 설명을 해야 한다. 홍준기는 자신이 반대하는 가설에 유리한 증거만을 내놓고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에 유리한 증거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홍준기가 과학적이고 상식적인 사고를 줄곧 비판하다보니 비과학적이고 몰상식적인 사고를 하게된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실수 행위들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을 따라 홍준기의 무의식 속에 프로이트에 대한 적대감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홍준기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지지하면서 프로이트의 주장에 반대되는 글을 쓴다. 정말 이상하다.

덧. 프로이트의 첫 히스테리 환자로 유명한 안나 O.의 아버지는 1880년 7월에 늑막 주변 농양에 걸려 10개월 이후인 1881년 4월에 죽었다. 안나 O.도 아버지 병간호를 했으나 1개월만에 히스테리가 도져 병간호를 그만두었다. 10개월이든 1개월이든 어느 쪽이나 "히스테리자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매력적인 남성'의 구애를 뿌리치고 아버지 병간호를 할 수 밖에 없었다"라고 말할만한 '오랜 세월'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홍준기가 인용한 프로이트의 주장이 어디에 나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프로이트 자신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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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8/10/04 18:45 | 트랙백(3) | 핑백(6)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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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홍준기 추격자 진짜 재밌다. 우와와와앙. 프로이트도 저 아저씨정도 간지가 났을라나? 그러고 보니 프로이트가 주연 및 주연으로 등장하는 추리소설도 있을법한데....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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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누렁별 at 2008/10/04 19:05
홍준기는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고나 썼는지 궁금합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0/04 22:46
무슨 얘길 하는 건지야 알았겠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한게 문제죠.
Commented by erte at 2008/10/04 19:59
오호 역시 차근차근 이렇게 설명이 되는군요... 전 그냥 저게 말이 되나?? 라고 생각하고 걍 넘어갔다능...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0/04 22:46
사실 저 글 전체를 보면 더 어이없습니다만 이게 본격 홍준기 까는 블로그는 아니라서요. ^^;
Commented at 2008/10/04 22: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0/04 22:47
감사합니다. 고쳤습니다. 어쩌면 경상도 사투리였을지도 모릅니다. "가가 가가가?"
Commented by 준식이 at 2008/10/04 22:50
전 완전히 잘못 짚었네요.. 에효..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0/05 12:52
^^
Commented by intherye at 2008/10/04 23:09
저는 설마 이렇게 이상하게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당시 "40~50대 남성들이 하나같이 병석에 누워있었을 것"이라고 아무 이유없이 가정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ㅠ_ㅠ 당시 수명도 짧았을 테니. 뭐.

그래서 "프로이트 당시 여성들은 대부분 아버지 병간호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프로이트가 분석치료했던 히스테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라고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거구요. ㅋㅋ

근데 말씀 듣고 보니 정말 이래저래 이상하군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0/05 12:5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용케 운영이 되었겠군요 ㅋㅋ
Commented by Semilla at 2008/10/05 12:11
아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앞의 부분은 그냥 illusory correlation이라고 쳐도, 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아홉 개의 점들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네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10/05 12:53
보통 같으면 저런 식으로 글을 쓰진 않으니까요 ^^
Commented by 행인 at 2009/04/08 10:22
그러니까 딸의 히스테리가 아버지를 병들게 했다. 랄까요. (농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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