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04일
교실 강의의 한계
개인교습의 현실적 적용에 sprinter님이 달아주신 댓글
개인교습의 효과에서 인용한 그래프를 보면 분명히 오른쪽 벽이 있다. 이 벽은 학습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차피 배울 분량이 정해져 있다면 좀 더 비효율적인 학습법이라도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개인교습과 전통적인 교실 강의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한 학기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을 각각의 skill들로 세분하면 5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모든 과목이 다 그런 건 아니고 대충 이공계 과목들. 완전학습이나 개인교습은 학생의 skill 습득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습계획을 짜는 과정을 무한반복하는 게 핵심이다.
전문성 발달에 대한 연구를 보면 전문성의 차이는 곧 연습량의 차이다. 그런데 아무 연습이나 다 전문성을 발달시키는 게 아니라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만이 전문성을 발달시킨다. 이 의도적 수련이란 곧 개인교습과 완전학습에서 하는 바로 그 상태파악->맞춤 학습의 무한반복을 말한다.
전통적인 교실 강의는 학생들에게 주는 feedback이 무척 제한적이어서 한 두 달마다 시험보고 성적이나 알려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feedback으로는 도저히 의도적 수련이 불가능하다.
영어 lecture는 중세 라틴어 lectura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은 '읽다'라는 뜻이다. 구텐베르크 이전 유럽에서 책값은 무척 비쌌기 때문에 강의는 곧 선생이 책을 읽어주면 학생들은 받아쓰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강의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음성 통신을 이용한 중세식 P2P.
내가 학교 다닐 때까지도 선생이 칠판에 판서하면 학생들이 베껴쓰는 그런 수업이 있었다. 사실 교과서에 있는 내용 정리한게 전부인데 그짓을 왜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요즘 대학 수업에서 보면 교수가 떠들면 학생들은 미리 출력해온 PPT 옆에 빼곡하게 받아적는데 이것도 역시 중세 수준을 못벗어난 것이다.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강의란 것의 장점을 찾자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해서 혼자 책 읽는 것보다 좀 나을 수 있다는 정도인데 이거야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전국의 수십만 학생들이 교실에 바글바글 앉아 강의를 들을 필요는 더이상 없어보인다.
얘기가 좀 샜지만 하여간 교실 강의는 교습법 자체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충분히 많다고 해도 개인 교습을 따라잡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제가 보기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좀 더 생각해 봐야 할듯. 한번의 수업으로는 개인교습과 conventioanl 방식이 차이가 나겠지만, 학습이 1년 ~ 3년 단위로 반복된다고 하면 1:1은 오른쪽의 벽에 부딪히고 conventioanl과의 차이가 줄어들수도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궁금해 지기는 하네요.
개인교습의 효과에서 인용한 그래프를 보면 분명히 오른쪽 벽이 있다. 이 벽은 학습범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어차피 배울 분량이 정해져 있다면 좀 더 비효율적인 학습법이라도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개인교습과 전통적인 교실 강의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한 학기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을 각각의 skill들로 세분하면 5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모든 과목이 다 그런 건 아니고 대충 이공계 과목들. 완전학습이나 개인교습은 학생의 skill 습득 상태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서 학습계획을 짜는 과정을 무한반복하는 게 핵심이다.
전문성 발달에 대한 연구를 보면 전문성의 차이는 곧 연습량의 차이다. 그런데 아무 연습이나 다 전문성을 발달시키는 게 아니라 의도적 수련(deliberate practice)만이 전문성을 발달시킨다. 이 의도적 수련이란 곧 개인교습과 완전학습에서 하는 바로 그 상태파악->맞춤 학습의 무한반복을 말한다.
전통적인 교실 강의는 학생들에게 주는 feedback이 무척 제한적이어서 한 두 달마다 시험보고 성적이나 알려주는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feedback으로는 도저히 의도적 수련이 불가능하다.
영어 lecture는 중세 라틴어 lectura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은 '읽다'라는 뜻이다. 구텐베르크 이전 유럽에서 책값은 무척 비쌌기 때문에 강의는 곧 선생이 책을 읽어주면 학생들은 받아쓰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강의의 목적은 교육이 아니라 음성 통신을 이용한 중세식 P2P.
내가 학교 다닐 때까지도 선생이 칠판에 판서하면 학생들이 베껴쓰는 그런 수업이 있었다. 사실 교과서에 있는 내용 정리한게 전부인데 그짓을 왜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요즘 대학 수업에서 보면 교수가 떠들면 학생들은 미리 출력해온 PPT 옆에 빼곡하게 받아적는데 이것도 역시 중세 수준을 못벗어난 것이다.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강의란 것의 장점을 찾자면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활용해서 혼자 책 읽는 것보다 좀 나을 수 있다는 정도인데 이거야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전국의 수십만 학생들이 교실에 바글바글 앉아 강의를 들을 필요는 더이상 없어보인다.
얘기가 좀 샜지만 하여간 교실 강의는 교습법 자체의 한계 때문에 시간이 충분히 많다고 해도 개인 교습을 따라잡기는 좀 어려울 듯 싶다.
# by | 2008/08/04 16:25 | 트랙백 | 핑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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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비 총합을 줄이려면, "한국 사회에서 불편없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 수준"을 정하고, 그 수준에 도달하는 학생들은 되도록 빨리 학교에서 사회로 내 보내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12년에 배울 거 8년에 배우고, 한 학년 당 50만명 가르칠 거 20만명만 가르치면, 한국 사회의 교육비 부담이 팍팍 줄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