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30일
비겁한 예언자의 절대 지식
분만실 40시간 체험, 군대보다 더 무서워 (글쓴이의 원문은 여기)
링크한 글을 쓴 사람은 자연분만이 좋다는 이유를 대지 않는다. 단지 "세상이 다 안다"라는 말로 끝이다. 이런 식으로 글쓴이는 제왕절개를 권하는 의사들을 자신만의 '세상'으로부터 간단히 추방해버린다. 골반이 작다든지 아기 머리가 크다든지 하는 의료진의 논거는 모두 불안을 부추겨 사기를 치기 위한 말들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말들이 사기인 것은 자연분만을 하기에 충분할만큼 골반이 큰데도 의료진이 작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거짓말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은 출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무엇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의료진은 무조건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도록 운명지어져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운명의 책, 즉 사회학 교과서에 기록되어 의료진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절대반지처럼 글쓴이의 사회학은 모든 지식을 굽어보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 운명은 한결 같이 사기다. 단 하나의 지식. 글쓴이의 사회학만 제외하고. 그런데 이미 글 자체에서도 드러나있듯이 글쓴이 또한 또 하나의 '전문가'이며 또 하나의 무자비한 권력자에 불과하다. 그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아내에게 자연분만을 강요한다.
글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으면서 두 개의 지식, 사회학과 의학이 충돌하고 두 전문가, 사회학자와 의사가 갈등한다. 그런데 김빠지게도 결정적 순간에 이 '어둠의 군주'는 지나칠정도로 고분고분하게 물러선다. "네 말은 들을 필요도 없이 거짓"이라고 단죄하던 위풍당당함은 온데간데 없다. 그 이유는 생뚱맞게도 '불안한 심리'와 그것을 이용한 '저들'의 비열한 술수 때문이다.
물론 그 술수가 저 위대한 운명의 책에 이미 기록되어있는 것은 당연하다. 글쓴이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이미 알고 있는 절망적 운명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그렇게 운명지워져 있다면 그것을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글쓴이의 사회학은 처음부터 아무 소용도 없었다. 병원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사기당할 것은 운명인 것을.
이쯤되면 어둠의 군주는 사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글쓴이의 사회학은 아내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의사의 사기로부터 아내를 지키지도 못했고, 진통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지도 못했다. 대신 글쓴이의 지적 허영심은 충분히 채워줬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먹었다.
마침내 권력에 굴복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패배야말로 빛나는 승리다.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은 것은 '절대 지식'인 글쓴이의 사회학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의학 권력의 '교과서적 악랄함'을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하다. 따라서 글쓴이의 사회학이 옳았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고로, 글쓴이의 승리다.
나는 '과학의 횡포', '전문가의 오만'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과학이 전횡하는 것처럼 보여도 과학이 한 발 물러가면 운명의 책을 든 예언자들이 몰려올 것을 알기 때문이고, 전문가들이 떠는 거만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도 그 전문가들이 비켜나면 정작 결정적 순간에는 꼬리를 말고 도망갈 '어둠의 군주'들이 기어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예언자 군주들 자신은 단 한 점의 살, 단 한 방울의 피조차 감수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는 모든 피와 살을 요구할 것이다.
그 운명의 책을 펼쳐보면 예언자들이 하는 얘기하고도 전혀 다르다는 게 더 문제겠지만.
링크한 글을 쓴 사람은 자연분만이 좋다는 이유를 대지 않는다. 단지 "세상이 다 안다"라는 말로 끝이다. 이런 식으로 글쓴이는 제왕절개를 권하는 의사들을 자신만의 '세상'으로부터 간단히 추방해버린다. 골반이 작다든지 아기 머리가 크다든지 하는 의료진의 논거는 모두 불안을 부추겨 사기를 치기 위한 말들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말들이 사기인 것은 자연분만을 하기에 충분할만큼 골반이 큰데도 의료진이 작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거짓말을 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은 출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무엇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의료진은 무조건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도록 운명지어져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운명의 책, 즉 사회학 교과서에 기록되어 의료진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그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모든 반지를 지배하고 모든 반지를 발견하는 절대반지처럼 글쓴이의 사회학은 모든 지식을 굽어보고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 운명은 한결 같이 사기다. 단 하나의 지식. 글쓴이의 사회학만 제외하고. 그런데 이미 글 자체에서도 드러나있듯이 글쓴이 또한 또 하나의 '전문가'이며 또 하나의 무자비한 권력자에 불과하다. 그는 아무런 정당한 이유도 없이 아내에게 자연분만을 강요한다.
글이 클라이막스로 치달으면서 두 개의 지식, 사회학과 의학이 충돌하고 두 전문가, 사회학자와 의사가 갈등한다. 그런데 김빠지게도 결정적 순간에 이 '어둠의 군주'는 지나칠정도로 고분고분하게 물러선다. "네 말은 들을 필요도 없이 거짓"이라고 단죄하던 위풍당당함은 온데간데 없다. 그 이유는 생뚱맞게도 '불안한 심리'와 그것을 이용한 '저들'의 비열한 술수 때문이다.
물론 그 술수가 저 위대한 운명의 책에 이미 기록되어있는 것은 당연하다. 글쓴이는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처럼 이미 알고 있는 절망적 운명 속으로 빨려들어간 것 뿐이다. 그런데 애초에 그렇게 운명지워져 있다면 그것을 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글쓴이의 사회학은 처음부터 아무 소용도 없었다. 병원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사기당할 것은 운명인 것을.
이쯤되면 어둠의 군주는 사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글쓴이의 사회학은 아내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의사의 사기로부터 아내를 지키지도 못했고, 진통의 고통으로부터 구해주지도 못했다. 대신 글쓴이의 지적 허영심은 충분히 채워줬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먹었다.
마침내 권력에 굴복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패배야말로 빛나는 승리다. 결정적 순간에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은 것은 '절대 지식'인 글쓴이의 사회학의 무력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의학 권력의 '교과서적 악랄함'을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하다. 따라서 글쓴이의 사회학이 옳았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증명되었다. 고로, 글쓴이의 승리다.
나는 '과학의 횡포', '전문가의 오만' 이런 말을 믿지 않는다. 과학이 전횡하는 것처럼 보여도 과학이 한 발 물러가면 운명의 책을 든 예언자들이 몰려올 것을 알기 때문이고, 전문가들이 떠는 거만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도 그 전문가들이 비켜나면 정작 결정적 순간에는 꼬리를 말고 도망갈 '어둠의 군주'들이 기어올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예언자 군주들 자신은 단 한 점의 살, 단 한 방울의 피조차 감수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는 모든 피와 살을 요구할 것이다.
그 운명의 책을 펼쳐보면 예언자들이 하는 얘기하고도 전혀 다르다는 게 더 문제겠지만.
# by | 2008/07/30 09:48 | 트랙백(3) | 덧글(6)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홍민희의 생각
비겁한 예언자의 절대 지식...more
제목 : 네가 한번 낳아 봐!!!
"요즘 여자들은 인내심이 없어서 자연분만을 안 해" "모유수유가 좋은 건 다 아는데 왜 비싼 분유를 먹여" "애는 최소 두 명은 낳아야지" 가끔 남자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야, 내가 '남자라면 무릇 군대 가서 병장 제대해야 사람이 되지'라고 말하면 넌 좋겠냐?" 누구나 인생에 매우 고통스런 경험을 겪지만 공통적으로 겪는 것이라면 남자는 군대, 여자는 임신과 출산을 들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고통이 자신이 직접 겪......more
제목 : 씁쓸한 링크
어찌저찌 웹질을 하다 Null model이라는 블로그에 들어갔는데, 이런 짜증나는 상황에 대한 글을 보았다. 그러니까 글이 짜증나는 게 아니라, 글에서 묘사한 상황이 짜증난다는 것이다. 문제의 글은 다음의 정말 어처구니없는 Ohmynews 기사에 대한 비평이다. 기사 여섯줄요약: * 사회학 시간강사를 한다는 어떤 남자의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었다. * 병원에서는 골반이 작고 아이 머리가 커서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고 한다. * 사회학자는 병원권력......more
> 분명한 것은 자연분만을 하지 못한 것을 "편한 것을 추구하네", "너희들 돈 많네", "산모가 운동을 안 했네" 등으로 너무나 손쉽게 규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40시간의 분만실에는 훨씬 '다양한' 변수들이 있었다. 그것이 의학적이든 심리적이든 말이다. 또 이것이 사회학적으로 다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도 아무도 그런 거 생각 안 한다. 최소한 난 그랬다.
글쓴이는 불안한 심리 때문에 사회학적 거짓에 속은 것 뿐입니다. 이런 걸 보통 "파렴치하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