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7/04 18:39

반과학주의와 문화결정론 유사학문

어떤 자료로부터 하나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도출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미결정성(underdetermination)'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론은 자료만으로 충족될 수 없다. 과학철학에서 사회구성주의는 자료로 채울 수 없는 이론의 빈 자리는 과학의 외부, 다시 말해 사회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이론이 자료만으로 충족될 수 없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이란 허구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은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에까지 이르면 반과학주의가 된다.

문화결정론은 인간의 사고나 행동이 문화적으로만 결정된다는 생각으로 많은 경우 반과학주의와 함께 짝을 이루어 유포된다. 문화결정론적 입장에서 과학 또한 하나의 문화 - 서구 백인 남성 대문자중심주의 블라블라 -에 불과하고, 반과학주의적 입장에서 문화결정론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들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투영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기각된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이인삼각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결정론과 반과학주의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사실 이 둘은 서로를 논박하는 관계에 있다. 만약 반과학주의가 옳다면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을 경험하든지 그 경험만으로 어떤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 결정될 수 없다. 아이는 경험만으로 채울 수 없는 빈 자리를 채울 '편견'이 필요하다. 이 편견은 날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 다시 말해 선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문화결정론에 따르면 특정한 문화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특정한 경험으로부터 적어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도출할 수 밖에 없는 결론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간에게 보편적인 하나의 과학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반과학주의는 반박된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하는데 이것은 쉽지 않다. 반과학주의를 버릴 경우 문화결정론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수용할 수 밖에 없고, 문화결정론을 버릴 경우 보편과학의 존재를 승인할 수 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반과학주의와 문화결정론은 동시에 취하면 모순되고,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결론은 둘 다 버리는 수 밖에 없다.

덧글

  • sprinter 2008/07/08 10:32 #

    강양구씨와 민주노동당 과학정책 담당과 같은 멤버들이 '문화결정론'쪽이었다는 것을 알고나서 - 같이 일하는 선배님이 과학사회학 학회에 갔다가 알게 되었다던데요. - 충격을 먹은 적이 있지요.
  • 아이추판다 2008/07/10 01:44 #

    그 바닥이 원래 좀 그렇습니다.
  • 수원 2008/09/13 00:52 # 삭제

    마지막 문단이 매우 이상합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안됩니다.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관계"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문화결정론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과학주의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 반과학주의와 문화결정론은 동시에 취하면 모순되고" 이 말의 뜻은

    반과학주의를 인정하면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문화결정론을 인정하면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입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제시하신 두 명제가 양립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취하는게 모순이 아니다 또는 하나를 버리면 다른 하나는 버리지 않아야 한다 두 주장중에 하나는 택해야 맞는거 아닌가요?

    이런 문제가 생긴 이유는, "반과학주의적 입장에서 문화결정론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들은 이미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투영된 것일 뿐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기각된다." 이 문장이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문화결정론은 관계 없이 반과학주의 입장에서는 모든 과학적 증거는 이데올로기적 편견이 투영된 것일 뿐입니다. 근데 마치 문화결정론에 반하는 과학적 증거만이 기각되는 것처럼 쓰셨네요. 모든 과학적 증거가 이데올로기적 편견이면, 애시당초 문화결정론이 들어설 공간이 없습니다. 즉 성립 불가능한 명제를 먼저 제시하시고는 나중에, 그 명제를 부정하시면서 최종 결론을 내리신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허수아비 때리기네요.
  • 아이추판다 2008/09/13 02:43 #

    (1)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문화결정론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2)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과학주의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3) 반과학주의를 인정하면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4) 문화결정론을 인정하면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이죠? 좀 순서를 바꿔서 다시 써보면

    (1)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문화결정론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3) 반과학주의를 인정하면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아야 하고
    (2)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반과학주의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4) 문화결정론을 인정하면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

    (1)과 (3)으로 부터 반과학주의를 인정하든 말든 문화결정론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고 (2)와 (4)로부터 문화결정론을 인정하든 말든 반과학주의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따라서 이들을 종합하면 반과학주의와 문화결정론을 모두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죠. 논리적으로 말 됩니다.

    그리고 문화결정론을 지지하는 과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문화결정론은 과학적으로 기각된 주장이기 때문에 반과학주의 없이는 옹호될 수 없는데 문화결정론과 반과학주의가 모순적이기 때문에 이 옹호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 bia 2009/09/07 02:53 # 삭제

    반과학주의와 문화결정론 검색 중에 들왔슴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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