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희망

추씨종친회 "추부길, 10만 추 씨 희망이었다" (프레시안)

조선일보에서 가장 해괴한 코너인 '조용헌 살롱'은 조선일보에서 가장 훌륭한 코너이던 '이규태 칼럼'을 잇는 코너인데 이규태 칼럼이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해부하던 코너라면 조용헌 살롱은 그 자체로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까발려 보여주는 자료다. 이 칼럼의 어제자 제목은 "수재 집안"이다. 내 생각에 18세기 스위스의 베르누이 일가쯤 되어야 이런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칼럼은 "근래에 학벌 좋은 집안으로는 인동 장씨인 장재식(張在植·73) 집안을 들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청포도를 마가린에 비벼먹는 듯한 부조화. 내가 이 맛에 이 칼럼을 끊질 못한다. 나 정신적으로 좀 M인 듯.

장재식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산자부 장관을 지냈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장하준이 그의 아들이고, 고려대 교수인 장하성과 노무현 정부에서 여성부 장관을 한 장하진이 그의 조카다. 확실히 학벌이 좋다거나 출세를 했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이지만 베르누이 일가처럼 베르누이 법칙, 베르누이 분포, 베르누이 정리 이런 게 줄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울대 많이 보내고 교수, 장관 많이 냈다고 '수재'라고 하면 이 단어가 좀 아깝다.

게다가 조선일보와 정치적 대척점에 선 인물들을 단지 출세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칭찬하는 칼럼을 쓰다니 이게 무슨 농담 같은 소리인지. 어느 정권에서건 높은 자리만 지내면 그걸로 땡큐라는 건데 사적으로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신문지상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출세는 지위와 경력, 성공은 업적과 성취이다. 이 둘은 대체로 함께 가지만 어느 정도는 따로 놀 수도 있다. 하지만 출세는 곧 성공이고, 출세 이외에는 성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조용헌 외에도 좀 많은 듯. 그러니까 코흘리개들이 일 년에 수천 명씩 합격하는 대학에 입학한 걸 자랑이라고 자기 얼굴 박아서 책 내고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지.

추부길이 실패한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데는 좌우에 이견이 없을 듯하다. 이 사람이 무려 홍보기획비서관. 세상에 어느 홍보 담당자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국에 교회 가서 사탄의 무리 운운하고 앉아있냐? 무슨 부두교 신도라서 주말마다 인형에 칼을 꽂다가도 상황이 그러면 말 조심을 해야지. 추씨 종친회에 제 정신 박힌 사람이 셋만 있어도 족보에서 파냈겠고만. 정말 추씨 종친회에 인물이 없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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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8/06/22 23:21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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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6/23 06: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06/24 01:23
이규태씨가 저승에서 슬퍼할 일이죠.
Commented by hama at 2008/06/23 14:29
추부길 비서관의 마태 인용인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를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1. 언제는 국민의 머슴이라더니 이젠 아버지면, 그럼 '國父'쯤 되나?
2. 아마도 이 인용을 통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바로 다음 구절이 아닐까: '너희는 _악하면서도_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06/24 01:23
네. 악하면서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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