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과학을 지배할 때

철학과 과학의 관계 설정을 둘러싼 논쟁은 근대에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그 중에서도 1920년대 소련에서 벌어진 논쟁은 가장 파국적인 결말로 치달았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연과학 이론과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는 1920년대 이후 구소련에서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즉 과학과 철학중에 어느 것을 우위에 놓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는데, 이른바 '기계론자'와 '데보린주의자'들은 격렬한 논쟁을지속하였다.

초기에는 기계론자들이 우세하였는데, 기계론학파의 대표격인 스테파노프(I. I. Stepanov)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과학에서 분리된 철학 고유의 영역이란 없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이란 현대과학의 최신의,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성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기계론자들은, 변증법은 자연에서 도출된 것이고 정밀과학적 탐구에 의해 발견된 결과이므로 각 개별과학의 특수한 방법을 무시한 채 변증법적 법칙을 새로운 연구영역에 적용하여 탐구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하였으며, 데보린주의자들이 변증법을 선험적, 관념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이처럼 과학을 철학의 우위에 두고 환원주의를 주장하던 기계론에 대한 격렬한 반격이 데보린(Abram M. Deborin;1881~1963)의 지도 하에 1925년 이후에 이루어졌다. 데보린은 그 해에 발간된 엥겔스(F. Engels)의 저서 '자연변증법'을 근거로 하여 변증법을 과학의 지도원리로 내세우면서, 기계론자들이 철학을 무시하거나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정하지않고 실증과학의 최종적 성과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은 여타의 실증과학과 나란히 독립된 학문으로서 무엇보다도 과학 방법론과 과학적 인식의 이론으로 존재하고, 각 개별과학을 관통하여 그 내적 연관성을 회복시켜 준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철학의 우위성에 입각하여 변증법 법칙의 하나인 양질 전화의 법칙이 과학 연구에 관철되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 최성우, "구소련에서의 과학철학 논쟁"

어디서 많이 본 양상의 논쟁이다. 이 논쟁은 소련의 과학자들에게조차 아무런 직접적 영향을 주지 못했다. 대체로 '정치적' 논쟁에 불과했다. 문제는 정치가 과학을 지배하면서 이 문제는 곧 과학의 문제가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리센코는 자신의 이론이야말로 소련의 공식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념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즉, 획득형질의 유전은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의 창조’라는 당의 정치적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강변한 것이었다. 결국획득형질의 유전과 ‘식물의 위상적 발전’이라는 애매모호한 법칙을 주장한 리센코의 이론은 1948년 10월 당의 공식적 이론으로채택되었고, 이로 인하여 기존의 유전학, 식물학, 산림학 등은 ‘부르주아 과학’으로 비판받고 수많은 유능한 과학자들이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쫓겨나는 사태를 빚었다.
더구나 리센코는 스탈린 시대에 소련과학 아카데미 유전학 연구소장 및 레닌 전연방 농업과학 아카데미 총재를 지냈기 때문에 정통유전학의 교육과 연구가 금지되었고, 그에 반대하는 이론을 펴는 유전학자들은 비밀리에 체포되거나 비공개재판으로 처형되는 경우까지있었다.

그 후 리센코는 자신의 이론에 따라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곡물증산에 끝내 실패함으로써 흐루시초프의 실각과 함께 몰락하고 말았지만,오랫동안 리센코의 이론은 스탈린 추종자들에 의해 ‘부르주아 과학을 극복한 사회주의 과학의 탄생’이라고 널리 선전되었다. 반면에 냉전시대의 서구사회에서는 공산주의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허구성과 그것이 과학에 끼친 해악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얘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리센코 사건을 돌이켜 볼 때, 리센코의 이론 자체가 특정의 철학이념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과학의 독자적발전법칙이나 객관적 성격을 무시한 채 이데올로기적인 잣대를 멋대로 적용하여 과학이론을 단죄하려 한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리센코 사건은 단순히 과거 이데올로기 대립시대의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에도 여전히 ‘리센코의 후계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기술이 파생하는 폐해와 문제점들을 고치자는 의도는 좋으나, 과학의 근본 성격에 대한 면밀한 고찰보다는 자신들의 편향된 이념성에 근거한 성급한 주장을 합리화시키기에 급급한 일부 급진적(Radical) 과학 사회학자들, 종교적 선입견으로 인하여 특정 과학이론에 반감을 지니고 ‘OO과학’이라는 사이비과학(Pseudo science)을 서슴없이 내세우는 일부 과학자들, 그저 서양과학을 단숨에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라며 과학적 방법론과 검증보다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잣대로 대중을 호도하려는 일부 '신과학'주의자들이 바로 리센코의 모습과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 최성우, "다시 생각하는 리센코 사건의 교훈"

아인슈타인이 맨하탄 계획에 참여하지 않았어도 원자폭탄은 상대성 이론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라캉의 이론이 마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나타낸다면 그 자신이 치료에 대해 언급을 했건 말건 치료의 문제에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심리학은 의료 외에도 온갖 종류의 정책에 개입한다. 교육에서부터 경제, 복지, 공무원 채용 심지어 운전면허 발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라캉의 이론이 옳다면 이 모든 영역에 대해 라캉주의의 개입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

2차세계 대전 때 프랑스의 정신병원에서 굶어죽은 환자가 몇명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리센코주의 농업정책으로 소련과 중국에서 굶어죽은 사람은 수천만명이다. 섣부른 반과학주의만큼 위험한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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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8/04/13 19:01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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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하늘선물 at 2008/04/13 22:33
본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인데 혹시 콰인이 쓴 논문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 읽어보셨나요? 혹시 읽어보셨다면 느낌은 어떠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전 대체 콰인이 프래그머티즘과 실증주의를 결합한 진짜 이유를 못찾아서 말이죠.
Commented by 라임 at 2008/04/14 06:31
사례와 라캉과 관련한 언급은 그다지 적절하게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리센코주의가 소련의 정책에 도입된 것은 그가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또는 이념적 작용 때문이지, 리센코주의가 옳았기 때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례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직접적으론 정치나 이념이 과학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안 된다 일 테고, 좀 더 나아가면 현실에 적용된다고 다 옳은 거라곤 할 수 없다가 되겠지요. "라캉의 이론이 옳다면 이 모든 영역에 대해 라캉주의의 개입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은 오히려 사례와는 반대되는 주장이 아닌가요?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04/14 09:57
하늘선물 // 제가 대답드릴만한 주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라임 // 라캉주의자들에게는 라캉의 주장이 옳겠죠. 소련에서 리센코의 주장이 옳았듯이. 물론 그들에게 옳은 주장이 현실에서도 옳은 건 아닙니다만.
Commented at 2008/04/14 16:3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04/14 17:05
1. 정신분열병 환자가 지금 한국에만 hundreds of thousands가 있습니다만.

2-1. 라캉은 패러다임이 되었다가 철학이 되었다가 바쁘군요. pinacolada님은 인문학적 기본소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쿤은 나름의 수련과 성과를 통해 공통된 직관을 얻은 특정 그룹이 정상 패러다임에 도전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저는 라캉과 의사 랭을 포함한 반정신의학자들이 이러한 그룹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위의 댓글에선 또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어떤 철학자가 인간 마음 등에 관하여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말을 한다고 그를 '반과학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철학적 주장을 앞세워 정상과학에 도전하는 게 바로 전형적인 반과학주의입니다. 쿤에 따르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정상과학에서 풀리지 않는 시급한 문제를 새풀 수 있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정상과학에 도전합니다. 라캉은 이 기준에 미달하는 게 틀림없어보입니다.

2-2. 게다가 라캉의 주장이 정말로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인지 의문이 드는군요. 마음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행동으로부터 마음에 대해 추론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심리학에서 마음을 연구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라캉의 이론이 증명할 수 없으려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마음의 성질에 대해서만 말해야 합니다. 라캉의 이론이 설명하는 마음의 작용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행동을 관찰해도 이론이 맞는지 틀린지 판별할 방법이 없겠죠.

그런데 라캉의 이론이 과연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마음의 작용을 다루는 이론인가요?
Commented by pinacolada at 2008/04/14 18:15
오락가락해서 죄송. 비전문가에 오락가락하는 사람들 말 듣느라 고생하시네요. 라깡은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에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말했듯이 자기가 뭘 치료할 수 있다고도, 정상 과학이 치료하면 안된다고도 말하지 않았는걸요. 치료와 같은 특정 개념의 뜻에 도전했다고 할 수는 있겠죠. 그 리플 말고 제 포스팅을 보시든지, 제 말 아닌 라깡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말씀을 해주세요.

라캉의 이론이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마음의 작용을 다루는 이론인지 아닌지를 질문하시는 건가요? 아이추판다님이 만약 그렇다고 생각해서 라깡은 반과학주의자라고 말을 하시는 거라면 어디가 그렇다는 것인지 말씀을 해달라는 거지요. 또 만약 그의 이론이 틀렸다는 것이 증명이 가능하다면 그 이론은 그냥 틀린 것이지, 반과학주의적 이론이 되는 것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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