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02일
완전한 사회과학
사회과학에서 쓰는 척도에는 명명척도, 순서척도, 등간척도, 비율척도가 있는 데 이 중에 비율척도를 제외하면 모두 완전하다. 사회과학에서는 비율척도가 나올 일이 거의 없다. 괴델의 정리 어쩌구 하면서 과학이 불완전하다는 애들(예를 들면 이런 댓글)한테 그말 그대로 돌려주면 사회과학은 완전하겠네? 사회과학 만세?
그 '완전'이 perfect가 아니라 complete라는 건 알고들 저러는 걸까...
그 '완전'이 perfect가 아니라 complete라는 건 알고들 저러는 걸까...
# by | 2008/04/02 00:50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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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를 할만도 했다고 생각합니다. 뜬금없이 전문용어들이 나열되고(명명척도, 순서척도, 등간척도, 비율척도) 게다가 제가 과학에 대해서 사형선고를 내린 것처럼 받아들이시고, 거기다가 정신분석학을 사회과학이라고 칭하시니 전문용어의 나열과 용어의 오용 때문에 여지껏 뭔말인지도 이해못하고, 절 향한 글이라는 것도 몰랐네요. 제가 여지껏 아이추판다님의 글에 댓글도 안달고 딴글에만 열심히 댓글을 달아댔으니 아이추판다님도 황당했을 테고, 전 광대노릇을 한셈이내요.
아무리 봐도 감정적 대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추판다님의 글에 사실 뭐라고 답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감정적으로 맞대응 해야하나는 생각도 들지만, 쌈박질할려고 아이추판다님의 블로그에 기웃거린 것은 아니기에, 그냥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글을 쏟아낸 데에 대한 임대료, 집세를 치뤘다고 생각겠습니다.
라캉은 재밌는 얘기를 하나 하는데요, 대충 이런 식입니다. “실제로 부인이 정부와 침대에 들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남편의 질투심은 병리적이다.”
부인이 정부란 잔것은 잔것이고, 거기에 대해 남편이 질투심을 느끼는건 또 별개의 문제인 것이지요. 부인이 정부와 잤다는 것에서 필연적으로 남편이 분개해야 한다는 결론은 논리적으로 뒤따라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무언가가 끼어듭니다. 제가 과학의 불가능성을 얘기했다고 해서, 그것이 아이추판다님의 분노를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분노가 느껴지기도 하지요. 남편의 질투심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투심을 느끼듯이요.
정당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러한 것들,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그러한 것들이 정당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라깡의 작업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팔루스이겠지요. 생물학적인 기관에 불과한 페니스이건만, 사회적 우월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되곤 합니다. 그러한 우월성이 토대없고 근거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즉 팔루스는 결여의 기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라깡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니 당연히 팔루스는 루트 -1, 즉 허수이기도 하겠지요. 허수가 말그대로 허구의 수이듯이, 남성의 우월성도 허구아닐까요?
전 자연과학은 불완전하고, 사회과학은 완전하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라리 완전한 것은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제가 너무 과학에만 치중해서 얘기한 측면덕에 그런 오해(?)가 발생한 듯도 한데, 라깡은 괴델의 논리로 과학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괴델의 논리를 체계-일반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체계A든 체계B든 간에요. 거기에 있는 팔루스를 지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체계의 불가능성이 체계의 일방적인 부정으로 까지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체계의 불가능성은 체계A건 체계B건 간에 한 체계가 함부로 다른 체계에 대해 우위를 점하지 말라는 얘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이추판다님이 과학의 이름으로(?) 라깡을 처단하는게 전 못내 불만스러운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체계를 배제하는 것은 아닙니다.(과학은 끝났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것이지요) 유클리드 기하학 이후엔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있고, 아무튼 괴델의 정리 이후에도 과학의 영역이 끝난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즉, 전 아이추판다님이 생각하는 방식의 과학의 불가능성을 얘기한것이 아닙니다. 한계가 있다는 것은 틀렸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한계가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아닌가요? 차라리 한계를 인정치 않으려는 것이 문제겠지요.
“자 이게 괴델 정리야, 그러니 과학은 끝났어.” “그게 완전성에 대한 것이라는 건 아니?”라는 것이 참 지루한 클리셰 아닌가요? 그리고 그 클리셰에 어느 순간, 양자 모두 갖힌 건 아닌가요? 괴델은 없어지고 클리셰만 있습니다.
라깡을 모르시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꼭 알아야할 당위적 이유가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과학의 한계가 과학의 종말과 직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되려 한계없는 것이 없겠지요. 단지 부탁드리고 싶은것은, 아이추판다님의 기준으로 함부러 판단내리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뒤따라 나옵니다. 라깡같은건 집어치우고 진화심리학을 공부하시다 보면 알게 됩니다.
정말 라깡이 그런 말을 했나요? 믿기지 않네요. 그는 말장난꾼이었나요?
puzzlist님의 용어를 빌리자면 허구는 중딩수준의 허구가 아닙니다.
사실 별생각 없이 쓴 측면도 있었고, 제 허수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측면 도 있었습니다.
제 착각 이었을지도 모르나, "기표와 기의 사이의 대수적 연산"과 같은 차원에서 라깡의 팔루스와 허수의 연관관계에 대해 의문시 하는 분들보단, 라깡이 남자 성기를 루트 -1이라 불렀다네 하며 키득대는 분들이 이 게시판의 대체적 분위기로 느껴졌는지라, 딱 그정도의 수준의 언급에서 멈추기도 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표와 기의 사이의 대수적 연산"과 관련하여 덧붙여보자면, 제가 무식하게 '허구의수'라고 이야기 했을 때 조차도 존재론적으로도 허구라는 이야기는 아니엇습니다.
그냥 일반적 의미의 허구가 아니라 허구는 현실구성적이면서, 실재성(라깡적 실재가 아니라 그냥 있다는 의미에서)을 갖습니다. 즉, 질투심은, 남자의 우월성은 허구에 불과하나, 현실적으로 작동한다고 이야기 드렸지요.
팔루스는 허구이나 분명 현실을 구성하는 허구이기도 하거든요. 이지점에서 허구와 현실의 관계는 역전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라깡적으로 예를 들자면 (라깡만 그리 생각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화폐가 그러하지요. 화페는 허구입니다. 외계인이 와서 돈쪼가리보면 그건 그냥 단순한 종이쪼가리나, 금속덩어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사회에서 화폐는 단순한 종이쪼가리가 아니라 교환행위에 사용이됩니다. 화폐의 가치는 허구이지만(100원 500원 하는 가치는 사물 그자체에 내재해 있지 않지만) (일단 이 맥락하에선) 허구의 힘으로 그 가치가 사물에 부여됩니다. 우리는 만원권 지폐를 단순히 종이쪼가리라고 메모지로 사용하다가 휴지통에 구겨 던지지 않고, 지갑에 고이 모셔두는 것이지요. 그러니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즉 팔루스라는 허구는 현실의 조건으로서의 허구입니다. 프로이트는 이와 관련해 환상을 "심리적 실재" 고 정의 내리기도 합니다.
제가 허구라는 용어를 사용했을때, 왠지 그허구란 단어가 말그대로 가짜, 상상의 산물, 실재성을 결여한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식으로만으로 파악된 것만 같아 부언합니다. 허구는 현실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할 수있는 것은 여기까집니다. 팔루스,허수, 허구에 대해서 허구의 의미를 좀더 분명히 하는 것까지는 가능하나, 팔루스와 허수를 대수적 연산관계로 잇는것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은 아직은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단지 라깡이 대수화를 할때, 그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수학자들이 동원됐다는 역사적 사실정도만을 덧붙일수 있을 듯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긴 해도 라깡의 허수에 대한 언급에서 '허수'를 '실수'로 교체해도 정확히 같은 정도만큼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ife is complex (삶은 복소수다).
It has real and imaginary parts (그것은 실수부와 허수부를 가진다).
저도 인문학도다보니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네요. 너무 구박하지 말아주세요. 그보다는 인문학도들에게 좋은 해석학 책을 소개시켜 주는 게 좋습니다. Not hermeneutics, but analysis. 복소해석학 책을 보고 난 뒤에도 '허수는 상상의 수'라는 말이 나올까요. 그 "real"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