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해



1. 정신분석학과 임상적 효과

한윤형님은 계속해서 남의 글 참 건성건성 읽으시는 것 같다. "훈고학질"이라고 하시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텍스트 자체가 구비되야 그 다음에 뭘 할게 아닌가 말이다. 한윤형님은 내가 아래와 같은 주장을 했다고 하는데

1) 실증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임상에서 효과가 없는 이론은 쓸모가 없다고 볼 수 있다.
2) 정신분석적 접근은 임상에서 효과를 보이는데 실패했다.
3) 정신분석학은 쓸모가 없다.

내가 정신분석학에 대해 언급한 대목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 임상심리학에서 정신분석학은 정신역동적 접근이라는 이름으로 제법 비중이 있습니다.
  • 프로이트에 뭘 넣고 뺐건 간에 결국에는 환자를 치료하고 내담자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겁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건, 약을 먹이건, 전기충격을 주건 환자를 잘 치료하는 게 적어도 임상에서는 옳은 것입니다.
  •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정신역동적 접근법의 치료 효과는 결코 다른 접근법보다 높지 않다. 임상적인 입장에서 라캉의 성과를 논의하려면 프로이트에서 뭘 빼고 뭘 넣었다는 구구한 얘기를 할 필요없이 치료 효과 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할 일이다. 정신분석학이 환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는 좋다.만약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만큼 치료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치료효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정신분석학은 "관심은있지만 실제로는 못하는" 무능한 관심에 지나지 않는다.

1)을 제외하면 도대체 어디에 임상에서 효과를 보이는데 실패했고 쓸모 없다는 주장이 있는지? 파란색으로 표시한 것은 사실판단이고 빨간색으로 표시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다. 초록색은 그 기준에 비춘 가정이다. 한윤형님은 이 '가정'을 내가 '주장'했다고 하는데 좀 답답하다. 그리고 한윤형님은 내가 "오직 임상효과에 의해서만 이론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임상적 효과만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한 적도 없다. 보라색으로 강조한 부분을 보라.

그리고 이것을 한윤형님이 인용하고 있는 임상심리학자의 글과 비교해보자. 내 글에서 빨간색으로 강조한 부분과 아래 글에서 빨간색으로 강조한 부분을 보라.

웰던지기 님이 “치료 기법이 400개가 넘어가는 요즈음에는 치료만 잘 되면 어떤 치료적 개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통합-절충주의의 시대”이며 “정신분석치료는 치료가 안 되고, 인지행동치료는 치료율이 높다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단언하는 상황

그런데 정작 한윤형님의 발언을 보자.

그나저나 "경두개 전기자극"을 가지고 끄적거린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보다가 황망해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 정신분석적치료의 기본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인데, 인간을 전기적 자극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발상과 같은 층위에 놓고 설명하시다니흠좀무입니다.

지금보니 내가 ECT(전기경련치료)를 TMS(경두개 자기자극)랑 헷갈렸다. 코일에 자석을 넣었다 뺐다하면 전기가 발생하는데(전자기유도) TMS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외부의 자기장으로 두개내 신경회로에 전류를 발생시키는 방법이다. ECT는 외부에서 직접 전류를 흘려주는 것이고. 참고로 ECT는 우울증 등에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진행성 기억상실증 등의 부작용이 있다. 미국드라마 "하우스"에서 한 에피소드에 ECT를 이용해 일부러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나온다. 어쨌든 혹시나 이것때문에 잘못 알고 계셨던 분들께는 죄송.

어쨌든 임상에서는 치료만 잘되면 그것으로 o.k.라는데 정작 동의를 안하고 있는 건 한윤형님이다. ECT가 어째서 인간을 전기적 자극으로 자작할 수 있다는 발상인지는 좀 이해가 안가지만(그러면 뇌졸중으로 인한 환각을 수술로 치료하는 건 톱으로 인간을 조작하는 것일까?) 한윤형님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보인다.

2. 증거의 부재와 부재의 증거


라캉에 대한 임상자료는 ‘제한적’이라는 기타 정신분석학의 임상자료보다도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증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때에 그의 라캉 비판은 제대로 자료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월권에 불과하다.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다시 말해 라캉에 대한 경험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해서 라캉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근거가 부족한 수많은 주장들이 있다. 러셀의 찻잔이 우주 어디를 떠돌고 있을 수도 있고, 세이건의 용이 차고에서 뜨겁지 않은 불을 뿜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수많은 주장들을 모두 경청할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적당한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믿기 힘든 주장으로 취급하는 것이 당연한 태도다. 한윤형님은 믿기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럼 반증을 하라는 것인데 그럼 도대체 저 밖에 떠도는 온갖 해괴한 건강식품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단 말인가?

한 윤형님은 내가 "거울단계 이론에 대한 실험적 반박"이 있다고 말했던 것처럼 주장하시는 데 내가 원래 했던 말은 "심리학의 거울 실험을 가져다가 벌인 황우석 급의 사기극"이라는 것이다. Wallon이라는 심리학자가 실험한 결과를 라캉이 뻥튀기해서 얘기하다가 그가 생물학주의와 결별하면서(또는 자신의 이론이 생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심오한 철학적 주장으로 점프했다가 결국에는 버린 것이다. 이건 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빚은 오류라고 할 수 없다.

하여간 라캉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경험적 자료가 거의 없다. 어딘가에 잘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찾을 수 있는 범위에는 없다. 그냥 한윤형님이 한 번 찾아보시면 어떨지. 재삼강조하지만 자료가 없다면 당연히 다른 이상한 치료법들과 같은 취급을 하는 게 당연하다.

그건 그렇고 내가 또 "논문을 찾아본다"고 한 적이 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안나오는데 한윤형님은 좀 남의 텍스트를 마음대로 바꾸지 마시길 바란다. 가장 비슷하게 말한 것은 "현대 심리학에서 의식/무의식에 대한 연구성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논평은 조만간 정리"(지금보니 또 연구성과 뒤에 조사 '와'가 빠졌다)이다.

조만간 쓰겠다고 했으면 좀 기다려 줄 것이지 성격도 급하시다.내가 "의식적 통제는 외측전전두피질(lateral prefrontal cortex)과 전방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에서 주로 기능한다. 뇌를 뒤져보면 의식/무의식 알수 있다."라는 식으로 써제끼면 한윤형님이나 관전자들이나 다 괴롭지 않을까. 그림도 찾고 하여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시라. 정 궁금하시면 직접 검색해보시면 되겠다. 위에서 말한 단어들과 António Damásio, Michael Gazzaniga, Joseph E. LeDoux 등으로 직접 검색하셔서 내 수고를 덜어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지만 별로 기대는 안한다.

3. 첨언

한윤형님은 내가 훈고학질을 하고 있다고 하시는데, 나는 인용을 통해 해야할 말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데 이걸 꼬투리 잡는 거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철학을 전공하는 건 내가 아니고 한윤형님이다. 쿤, 콰인, 김재권, 해킹을 읽는 건 내 일이 아니라는 한윤형님이 해야 할 일이다. 나는 솔직히 한윤형님이 쿤을 그런식으로 인용하는 걸보고 SSR을 읽긴했는지 의심이 들었다. 내가 잠시 만만한 GT님을 놀렸을 때 좀 알아들으시길 바라는데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책을 읽지 않으면서 철학을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한 태도인가? 괴델은 수학자지만 철학과 교재에도 자세한 해설이 나온다. GT님은 철학과 교과서를 읽지 않겠다고 버티고, 한윤형님은 자기가 인용하는 철학자들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버티는데 그러면서도 철학 텍스트는 보존해야 한다고 외치면 도대체 뭘 위해 그 텍스트는 보존하는가? 읽지도 않을 건데?

그리고 한 댓글에서 해킹에 대해 '검색'해봤다고 하시는데 솔직히 좀 충격이다. 철학 전공자가 철학자의 책을 읽지 않고 인터넷 검색을 한단 말인지? 그러면서 철학 텍스트는 보존해야 한다고? 그건 언제 읽을 건가? 검색되면? 그렇다고 한윤형님이 뇌과학이나 심리학의 책을 읽는 것도 아니잖는가? 한윤형님에 따르면 해킹이 심리학이 하드 사이언스가 아니라고 했다는 데 그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텍스트를 직접 확인하고 하시는 얘기인지 아니면 그냥 인터넷 검색해서 편의대로 하시는 말씀인지 묻고 싶다. 아니 그리고 내가 언제 심리학이 하드 사이언스라고 했나.

하여간 한윤형님이 내 글을 제대로 읽든지 철학자들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든지 둘 중에 하나라도 하지 않는 이상 이 논의에는 진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의식/무의식에 대한 현대 심리학의 성과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논평은 이 논쟁과 무관하게라도 올릴테니 기다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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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추판다 | 2008/03/25 18:20 | 트랙백 | 핑백(2)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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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윤형 at 2008/03/25 18:43
1번에 대해서는 당연히 님의 언명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이건 논쟁이 피로해지기도 전의, 초기 상황이니까요.) 그런 사실 관계를 다 적시하면서도 임상으로 정신분석을 치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얘깁니다. 자신이 그런 '말'을 안 했다고 다가 아니라, 논변의 흐름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어쨌든 라캉만 별도로 구별시키는 쪽으로 자신의 말을 확실히 정리하셨다니 그 점을 존중하겠습니다.


2번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면에서 동의하셨으니 되었구요. 그러므로 방법론을 격파하는 쪽이 올바르다는 얘깁니다. '실증주의'로 후퇴하신 것은 님이었잖아요?


거울단계 얘기는 "Wallon이라는 심리학자가 실험한 결과를 라캉이 뻥튀기해서 얘기하다가 그가 생물학주의와 결별하면서(또는 자신의 이론이 생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심오한 철학적 주장으로 점프했다가 결국에는 버린 것이다. 이건 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빚은 오류라고 할 수 없다."라고 정리해 주셨으니 좋습니다. 님의 최초의 언급이 이 내용이었다는 건 이 서술을 보고 다시 읽으니 분명한데, "거울단계 그 자체가 사기극이라는 겁니다. 황우석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듯이 라캉에게 다시 기회를 줘야할 이유도 없어요."라는 덧글을 보고 "거울 단계 이론의 실험적 반박"이 있었다는 주장을 했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왜냐하면 라캉이 잘못된 심리학 실험을 가져다가 철학적으로 점프하는 이론을 만든 후, 나중에 그것을 다시 버렸다는 게 왜 '황우석급의 사기극'인지 저로서는 전혀 이해가 안 가니까요. 처음에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 이론에서 철학적 착상을 얻었을 뿐인데, 그게 왜 사기가 되죠? 니체가 '힘에의 의지' 개념을 도출하기 위해 읽었던 자연과학 이론들은 오늘날 거의 다 오류로 판명되었지만 그렇다고 '힘에의 의지'를 황우석급 사기라 부르진 않죠. 이 얘기는 버전을 바꿔 여러번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론을 대하는 님의 태도가 그러니 저는 님이 라캉에 대한 대단한 반증 자료를 발견해 냈나 보다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거죠.



책을 별로 안 읽은 건 당연히 자랑할 일은 아닌데, 철학자 수가 무지하게 많은 만큼 이안 해킹을 제가 안 읽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올 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텍스트를 인용하지 않아도 논점만 잡으면 논의는 가능한 것인데, 님은 논지의 흐름 자체가 일관되지 못하고 잡다한 다발을 계속해서 쏟아 내기만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 입장에선 좀 정리가 필요했던 게지요.


어쨌든 올리시겠다는 논평은 흥미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Commented by at 2008/03/25 20:50
조만간 쓰겠다고 했으면 좀 기다려 줄 것이지 성격도 급하시"다고 하시는데 뜨아하군요. 님의 논지는 심리학의 범위에선 실험 결과와 의학적인 성과가 최우선된다는 것 아니었니까? 그리고 그 논지의 바탕에는 '듣보잡 라깡'에 대한 경험론적인 근거나 구체적으로 반증된 그의 거덜난 임상이론(에 대한 인용들)이 빼곡이 박혀있는 줄 알았습니다. 정상적이라면, 한윤형 님이 "실험의 내용을 좀 공유해"달라고 하셨을 때 머리 속에 즉각적으로 그 내용이 떠올랐어야 했겠지요. 슬슬 피하는 기미를 보이다가, 요구가 집요해지자 "한윤형 님이 찾아보시던가"하는 건 헛웃음만 나오게 합니다. 도대체 라깡이 왜 듣보잡입니까?

제가 영국의 한 저명한 학자의 입을 빌려, '라깡은 심리학에서도 짱이거든?' 이렇게 주장하면 님께서 과연 순순히 인정할 수 있을 런지요? 님이 다발적으로 터트린 인용들은 거의 그런 식이었습니다. 또한 인문학도들의 실패한 명제들을 바로 잡는 데 골몰한 그 인용들은 사실상 논점을 흐트리고 있지요. 한윤형 님 글의 댓글에서 제가 "철학에서의 성취"를 동시에 언급해야 한다고 했던 건, 님의 심리학적 "창"이 부실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님의 인식의 출발점은 '라깡은 듣보잡'이지만, 적어도 저에겐 "심리학에서 라깡이 그 정도였나?"였거든요. 심리학에 대한 무지로, 아리송한 저의 머리 속을 명쾌하게 정리하려면, 님은 이론적(인용)으로 헤집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님이 쌓아올린 드넓은 글들에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울 단계 이론은 황우석 급"라고 할 때 동의하는 건 님에 친숙한 동무들 뿐일 것입니다. 결국 님께서도 (심리학에서)반증된 라깡 이론에 대한 숙지가 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구잡이로 인용을 찾는 데 골몰하기 보다, 논쟁의 핵심이 될 만한 인용을 찾고, 그 후에 확고부동한 문제 제기를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라깡과 해괴한 건강 식품이 동일한 비교 범주에 있다고 생각하는 지요? 지금 건강 식품에 대해 논의를 전개했다면, 그 해괴함을 입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하는 건 기본이라 봅니다.
Commented by 아이추판다 at 2008/03/25 21:38
처음부터 불필요한 인용은 자제하든가, 원전을 읽지도 않은 철학자의 이름을 늘어놓는 일을 자제하면 됩니다. 논지와 무관한 철학자들의 이름은 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대셨어요. 솔직히 쿤이나 콰인은 그렇다치고 김재권을 언급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가네요.
Commented at 2008/03/26 09: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 at 2008/03/26 09:50
동물원// 쭈니마, "월덴지기님은 실제 현장에서 라캉이 그렇게 무능하다는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라깡에 대해 첨듣는 그분이 주장까지 하셨냐는..

"이 논쟁이 자신이 "듣보잡"취급 당한데 대한 감정을 가지고 감정적으로 시작했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만"
애초에 그렇지 않은데..

니마의 생각은 안드로메다...
Commented by 동물원 at 2008/03/26 11:48
..//지우고 났더니, 아래에 댓글이 있었군요...
우선 답변을 하자면...
(1) 월덴지기님이 “체계적으로나 사변적으로는” 들어본 적이 없을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처음은 아닌듯 싶은데요 또한 "문외한"이라는 표현 때문에 님의 "첨듣는"이라는 말이 나왔다면, 여기 아이추판다님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싶은데 주장까지 하셨다는…

(2) 동의합니다. 그 부분은 지우겠습니다.

아래에 다시 답니다.
Commented by 동물원 at 2008/03/26 11:49
논의가 안드로메다까지 갔군요..

그런데 윤형님께 말씀드리면, 아이추판다님 글의 형식은 사회과학계열에서 자주 쓰이는 형식이라는 것은 말씀드리고 싶네요. "claim-support-citation".. 저도 이런 형식이 솔직히 더 읽기에 편합니다. 그냥 상대방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듯..

여기 논쟁의 재밌는 점이, 경험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경험자는 보기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무슨말이냐면, 그동안 임상심리학은 있어도 임상심리학자는 없었고, 라캉은 있어도 라캉학자는 없었다는 말이지요.

어쨌거나, 너무 멀리와 버려 자기말만 되풀이하는 모냥새가 되어가는데, 이쯤에서 핵심을 한번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한 듯싶습니다.

이 논의의 핵심은, "라캉이 듣보잡이냐?"에 있습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았기에 이리 멀리 온 것이고요. 여기서 듣보잡은 "무능"의 뜻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추판다님의 논점을 “주장-근거”형식으로 재구성해보면, 그 핵심주장은…"심리학에서 라캉은 듣보잡이다.” 그 핵심근거는…”왜냐하면 임상효과가 없기 때문이다.”입니다.

또한, 라캉의 임상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효과에 대해 "출판"된 경험적 연구결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근거를 따져보고 그 주장을 논파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약에 임상에서 라캉이 "듣보잡"까지는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월덴지기라는 스스로를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심리학자라 하는 분이 나타나니, 재미있게도 이제 논의방향이 틀어지려고 하네요. 처음의 “~없다”에서 “있지 않다”식으로. 월덴지기님은 실제 현장에서 라캉이 그렇게 무능하다는 취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뭐 통합-절충주의때문이라 합니다만..

따라서, 현장의 목소리가 무시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면, 임상심리학에서 듣보잡인 라캉이 왜 아직도 "현장"에서 듣보잡 취급을 당하지 않고 쓰일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라캉의 임상심리는 듣보잡”이라는 주장이 더 타당해질 것입니다.

어쨌거나, 라캉의 임상심리는 과연 "능"이 "무"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현장에서 라캉을 시도하는 분들은 "무능"한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려는 사람들이라는 말일텐데... 뭔가 이상하군요. 그러면 이분들도 듣보잡이 되는지…

따라서, 주장에 대한 책임이라 할까요? 회피가 아니라, 이에 대한 명확한 정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과학은 그렇게 내 입맛에만 맞게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베스킨라빈스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이추판다님의 주장처럼, 요즘 실험은 무척 돈이 많이 듭니다. 따라서 선별해서 합니다. 예를 들면 돈 되는 것 위주로. 따라서 실험만을 가지고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사실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반증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이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과학 윤리입니다.

따라서, 남 보다 좀 더 아는 분야라도 상대방에 대한 주의는 필요할 겁니다. 그게 어쩌면 “존중"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인간의 의식속에 아직도 살이있는 것은, 그것이 필요해서이기 때문입니다. 라캉이 임상속에 아직 살아있는 것도 그럴 것이고요. 음, 이런게 진화론적 설명 맞지요?
Commented by 식물원 at 2008/03/26 12:04
임상에 효과가 있었다 없었다하는 것은 검증을 거쳐 정확한 인과관계가 얘기되어야 합니다.
그런 걸 따지지 않은 채 임상 사례가 많다, 듣보잡이 아니라고 한다면
세기의 명약 <무안단물>도 부인할 이유가 없습니다.

라캉의 임상 사례가 과학적 검증을 거쳤단 증명만 있으면 끝납니다.
입증 책임은 옹호자 측에 있습니다. 단순히 <카더라 ~>하는 식으로 나서지 말고
과학적 실험을 거쳐 타당성이 인정되었다는 등의 정확한 자료를 제시하세요.

그렇지 않다면 무안단물도 듣보잡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시면 됩니다.

Commented by GT at 2008/03/26 12:33
결과적으로 "개망신"만 당하고 깨진 꼴이 됐지만, 애초에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불완전성 정리와 불확정성 이론을 꺼낸 이유는, 그것이 현재 통용되는 과학의 한계, 다시 말해 과학(논쟁 처음에 아이추판다 님이 정의한 의미에서)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는 깔끔하게 해소될 수 있는 한계가 아니라, 인간 이성 자체의 “내재적” 한계가 아닌가라는 지적을 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러한 “내재적” 한계와 라캉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인간 존재의 “내재적” 틈새(chasm)의 “미학적” 친화성을 느낀, 더 나아가 그러한 한계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사변”에 매혹된 인문학도의 “상상력”(상상력 폄하하지 맙시다. 과학사를 보더라도 상상력의 비약으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진 예가 허다하지 않습니까?) 놀이였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뚫고 나갈 능력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의식의 의의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수리철학에 대해 “좃”도 모르는 GT가 “개망신”을 당하는 게 아니라, 완전성을 향한 과학의 “축적적인” 진보 가능성에 대한 “신뢰”(세계관)의 유무이기 때문이지요. 아직 완전한 과학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든 불가능하다고 믿든, 아이추판다 님이 의거하는 “과학”적 기준에 의해서는 어느 쪽도 검증되거나 반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것을 믿음(세계관)이라는 용어로밖에 지칭할 수 없겠지요. 따라서 여기서는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으므로 차치하고, 이 논쟁의 충돌점을 좀더 좁혀보는 쪽으로 몇 가지 지적하지요.

1. 아이추판다 님이 과학학 학자들, 과학주의자들, 반과학주의자들 등의 견해를 간추린 이상욱의 논문에 기대 정의한 과학이 무엇인지 명료하지 않습니다. 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과학자들은 주어진 제약조건 내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가능한 합리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과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과학학자들의 주장이다”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

“내가 기준점으로 삼은 것은 과학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의 상이다” (쿤, 과학학, 김재권..)

그러나 정작 과학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의 상에 대한 아이추판다 님 자신의 진술을 없습니다. 인용문만 있을 뿐이지요. 이 부분을 직접 자신의 문장으로 서술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과학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분명한 자신의 정의가 없는 마당에서 라캉 정신분석학은 사이비과학이라고 단죄하는 논리는 애매한 수렁에 빠지기 십상습니다.


2. 불명료한 수준에서나마 “과학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의 상”에 의거해서 라캉 정신분석학을 단죄한다고 할 때, 그 대상의 적합성 여부가 남아 있습니다. 님은 이렇게 썼습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비평의 수단으로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그렇게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캉에게는 철학과 심리학이 한 몸이므로 심리학 쪽에서 창으로 찌르면 철학 쪽까지 꿰뚤릴 수 밖에 없다.” - 라캉 위에 그어진 선

이 진술의 근거로 내세운 건 <한국 라캉과 정신분석협회>의 회칙입니다.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이 학회가 정식으로 라캉 정신분석 임상 자격증을 딴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는가 여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라캉과 정신분석협회>의 주장(어느 분이 소개한 임상 보고서까지 포함)을 격파한다고 해도, 라캉 정신분석학은 별다른 충격을 입지 않습니다.

게다가 저 회칙만을 근거로 해서 라캉 정신분석학에서는 “철학과 심리학(더 정확히 쓰면 이론과 임상이라고 해야겠지요)이 한 몸”이라는 진술을 하는 것도 상당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논리적 비약일뿐더러 부정확하기까지 합니다. 라캉주의자들도 이미 여러 개로 분화해서 각자 나름대로 자기 영역을 구축(임상을 강조하는 프랑스 라캉 학파, 철학과 정신분석학을 활발하게 접목한 슬로베니아 학파, 문화 이론에 주력하는 영미 라캉 학파)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하나의 창으로 꿰뚫겠다고 나서는 것은 풍차에 돌진하는 동킨호테나 마찬가지입니다. 굳이 하고 싶다면, 임상을 강조하는 프랑스 라캉 학파를 공격해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님이나 저도 별반 정보가 없어 보입니다. (저는 당연히 임상에 문외한입니다.) 즉, 라캉주의가 임상에서 무능하다는 증명을 해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구할 수 있는 자료가 턱없이(에반스 같은 사람의 발언 말고요. 그건 제가 오펜하이머 인용한 거랑 같습니다.) 부족하지 않나 싶군요. 물론 쓰신다는 그 논평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라캉 정신분석학이 임상에 무능하다는 경험적 자료를 제시하라는 얘기는 이미 윤형님 등 많은 분들이 지적한 내용입니다. (노정태 님은 라캉 학파 자신이 과학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로 최근에 글을 쓰셨던데, 프랑스 학파가 여기 블로그에 와서 개입하라는 뜻밖에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논쟁에 참여해서 라캉을 나름대로 옹호하는 어느 누구도 라캉 정신분석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이름으로 엄청나게 단죄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저항하고 있을 뿐.)


3. 윤형님도 어느 글에선가 지적했지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과연 아이추판다 님이 의거하는 “과학”적 기준에 의거해서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증이 필요합니다. (심리학이 과학이냐/아니냐 하는 문제도 더불어 탐구되어야겠지요. 님은 여기에 대해 심리학은 hard science가 아니라고 언급했습니다.)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누구누구의 말로는 부족하지요. 게다가 정신분석학 자체가 님이 의거하는 ‘과학’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담론’이라면? (이건 제가 제기하려다가 실패한 거지만, 서두에 썼듯이 문제 자체의 의의는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결론입니다. 님이 어떤 글을 쓰실지 모르지만, 너무 엄청난 “놈”을 건드렸습니다. 윤형님 말대로 저는 프로브(그런데 프로브가 미네랄 안 캐면 자원 없어서 아무것도 못 만듭니다;;)지만, 캐리어가 뜨면 어쩌시려고 그러는지 모르겠군요...
Commented by 동물원 at 2008/03/26 14:37
식물원...글쎄요, 제 글을 잘 읽지 않으신것 같은데요.. 님이 답을 하실지 모르지만 하나만 여쭙지요.
만약 듣보잡이라는 무안단물을 처방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의사는 막장입니까, 아닙니까?
곰곰히 생각해 보시면 제가 무슨말을 하는지 아실 겁니다.
Commented by 로로 at 2008/03/26 15:02
동물원님 / 월덴지기님의 텍스트를 역시 오독하셨군요. 그분은 라깡이 임상심리학에서 듣보잡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리학에서 듣보잡이라고 인문학 분야에서도 그런 것은 아니다, 라고 지적하셨죠. 라깡이 임상심리학자라 보기도 어렵다고 분명히 쓰고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치료 효과에 관한 월덴지기님의 언급은 라깡 때문에 정신분석학자들이 도매급으로 사이비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었지, 라깡 자체가 임상적으로 어떠한 효용을 가진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도 임상을 전공하는데, 라깡이 임상심리학에서 듣보잡 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인문학 분야까지야 모르겠지만요.

라깡과 정신분석학,
정신분석학과 임상심리,
임상심리와 심리학,
이 세가지의 범주 구분이 정확히 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저로썬 미국 심리학과 대륙 심리학의 구분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프랑스쪽은 모르겠습니다만 독일이나 네덜란드 쪽은 되려 미국보다 더 차가운 (더 철저하다는 의미입니다.) 심리학적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거든요.
Commented by 식물원 at 2008/03/26 16:05
곰곰히 생각해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껏 진행되어 온 얘기에서 라깡을 무안단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안단물이라고 하여도 과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된다면 모르죠.
그건 라깡도 똑같습니다.
임상 얘기까지 끌고 나왔다면 과학적 검증이 필수인데 임상 사례가 많다,
그런 얘기만 하면 무안단물은요?
고장난 세탁기도 고치고 죽은 강아지도 살린 임상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말씀을 그대로 빌리면,
무안단물을 과학의 이름으로 단죄해서는 아니되며,
무안단물교 자체가 '과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무개 목사님의 은총이 됩니다.

무안단물이 엉터리여도 설교만 논리적이면 되겠군요.
모님의 말씀을 보니 무안단물의 효능을 입증하지 못 하자
아담과 이브, 모세, 엘리야, 소돔과 고모라, 예수 등을 끌어들이는
그런 목사님 행태이지만요.
Commented by 동물원 at 2008/03/27 10:07
식물원.. 제 질문에 답을 안하셨군요. 제 질문은:

"만약 듣보잡이라는 무안단물을 처방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의사는 막장입니까, 아닙니까?"
였습니다..

Commented by 식물원 at 2008/03/27 11:48
여전히 이해를 못 하시네요.

무안단물이 듣보잡이건 말건 효능만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그만입니다.
무안단물이 듣보잡이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약물이 실제로 과학적 입증이 되었느냐가 중요하단 겁니다.

실제로 임상학적 사례가 있다고 하는 건
그게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바,
여기 댓글 다시는 분들 중에서는 임상과 과학적 검증이 별개인 것처럼
전제하고 논하시는 분들은 임상에 대해서 고로 아무 것도 모른다라는 것이죠.
라캉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얘기하다가
아이추판다님이 논파하자 임상학적 사례가 있다 <카더라>하면서
반론하면서 우리의 라캉짱은 듣보잡이 아니야하고 하는 얘기가 아닌가요?

과학적 검증과 관계없이 라캉이 그 쪽 세계에서 듣보잡이 아니길 인정받고 싶어서라면
그 쪽 학문 분야는 그럼 과학적 검증 없이도 이른바 <카더라>하나만 가지고도
권위를 인정받고 듣보잡이 되지않는 곳이라는 걸 실토하는 셈입니다.

검증되지도 않은 시술을 하거나 약물을 처방하는 의사야말로 막장입니다.
듣보잡이더라도 검증된 판다쓴물을 투입하는 의사는 막장이 아니지만
듣보잡이 아니더라도 검증되지도 않은 무안단물/라캉단물을 쓰는 의사는
의사 자격증을 박탈하고 당연히 감옥에 끌려가야합니다.

과학적 검증이 필요없다고 주장하시려면 관념의 세계에서만 노닐면 됩니다.
대신 분수를 알았으면 좋겠군요. 검증되지도 않는 철학은 무안단물과 동급이란 걸
인정하면 그만인 겁니다. 관념의 세계에서만 노닐면 되는 이들이 주제 넘게 나서니까
문제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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