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8 02:24

쿤, 과학학, 김재권 그리고 해킹 유사학문

이 글은 윤형님의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에 대한 답변이다. 우선 라캉은 물론이거니와 과학철학적인 얘기로 여러 포스트를 올리고 싶진 않은데 한국의 출판시장의 사정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도 인기가 없고, 철학도 인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과학철학은 더더욱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난 몇몇 글들을 읽고 계신 분들이 있으니 꾸역꾸역 따라가보도록 하겠다.

윤형님은 서울대 철학과에 재학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얘기하면서 글을 시작해볼까한다. 예전에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 개설된 과학철학 수업에 청강할 때 일이다. 수강생들은 세 부류였는 데 하나는 철학과 학생들이었고 또하나는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학생들이었다. 마지막은 그냥 비전공자들들이었다. 첫 수업이 끝나자 철학과 학생들은 수강을 취소하고 썰물빠지듯 수업에서 빠져나갔다. 나같은 비전공자도 한 수 배움을 청하고 수업을 들으러 오는 데 정작 전공자들이 자기 과 수업듣기를 포기하다니 좀 아연한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 수업은 나에게 과학철학 전공자들에겐 일단 무조건 한 수 접어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철학과 출신들이 과학철학에 대한 얘기를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보는 편견을 심어주었다. 물론, 그 해 그 수업에서만 국한되었던 사건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1. 쿤의 경우

다음은 1000명에 윤형님이 단 댓글이다.

과학철학을 오해하신 건 아이추판다 님이죠. 아마 과학학자나 과학사회학자들과 가까운 쪽의 학자들만 봐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진짜로 과학이 어째서 과학이냐라는 문제에 대해 논의한 과학철학자들을 살핀다면, 쿤은 물론이거니와, 파이어아벤트 같은 경우는 얼마나 막 나가는데요.

파이어아벤트는 그렇다치고 정말 쿤이 '막나가는' 사람일까? 쿤 자신의 목소리로 들어보자.

이 다섯 가지 특징들 - 정확성, 일관성, 넓은 적용범위, 단순성, 그리고 다산성 -은 모두 한 이론의 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한 표준적인 기준들(criteria)이다. 만약 이 특징들이 표준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 책에서 그것들에 대한 논의를 위해 훨씬 많은 공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확립된 이론과 갑자기 나타난 경쟁 이론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에, 이 특징들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는 전통적인 견해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같은 부류의 다른 특징과 함께, 이 특징들은 이론 선택을 위해 유일하게 공유된 기초를 제공해준다.

토머스 쿤, '객관성, 가치 판단, 그리고 이론 선택', 조인래 편역, "쿤의 주제들: 비판과 대응",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7, 302쪽.

쿤이 말하는 것은 이런 기준들이 실제 이론 선택의 상황에서 생각만큼 적용하기 쉽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는 것이며 이때 과학자들 개개인의 선택은 어느 정도 임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임의성을 인정하더라도 쿤은 결코 '막나가'지 않는다. 쿤의 주저를 잠시 펼쳐보자.

과학자 사회의 성격은 과학에 의해서 해결되는 문제들의 목록과 각각의 문제 해결의 정확도가 둘 다 계속해서 증가하리라는 실질적인 보장을 제공한다. 적어도 그것이 주어질 수 있는 어떤 길만 있다면, 그 전문가 사회의 성격은 그러한 보장을 제공한다. 과학자 집단의 결정보다 더 상위인 기준이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김명자 역, 까치, 1999, 239쪽

다른 해석의 여지를 막기위해 이 대목에 대한 쿤 자신의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자.

각 개인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들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훈련받은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을 신뢰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주장하였다. 나는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결정보다 더 나은 어떤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수사학적인 질문을 한 바 있다.

토머스 쿤, '객관성, 가치 판단, 그리고 이론 선택', 조인래 편역, "쿤의 주제들: 비판과 대응",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7, 300쪽.

물론 쿤의 이런 입장이 "과학 혁명의 구조" 이후 직면한 엄청난 비판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정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사실 쿤은 시기별로 조금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쨌든 훈련받은 과학자들의 집단적 판단(이라기보다는 사실은 집단적 무관심)을 근거로 라캉을 배척하는 것이 쿤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 그렇다면 과학학자들은?

쿤이 딱 잘라 어떤 입장이라고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사실이고, 윤형님도 이점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에서 윤형님은 아예 쿤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어떤 과학철학도 한의학을 옹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이 역시 그렇지는 않다. 파이어아벤트는 일종의 ‘인식론적 무정부주의’를 내세웠고 뉴튼 물리학과 점성술이 다른 이유를 찾아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점성술조차도 옹호가 되는데 한의학이 무슨 대수일까. (그런데 나의 경우 파이어아벤트의 견해에 찬동하지는 않는다.)

파이어아벤트가 영향력있는 과학철학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파이어아벤트는 분명히 과학철학의 스펙트럼에서 한 쪽 끝에 위치한다. 나는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라캉을 적어도 심리학과 대상을 공유하는 영역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경험적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주장을 '과학주의'라고 부를 과학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과학철학자, 과학사학자, 과학사회학자 등 과학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상이 어떤 것이며 이들이 진정한 과학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인용할 텍스트는 이중원등이 엮은 "인문학으로 과학읽기"에 실린 이상욱의 "과학연구의 역사성과 합리성"이라는 논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합리성에 대해 철학자들만큼이나 의심스러워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과학자들에 비하면 과학에 대해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 주제를 논의하면 밑도 끝도 없기 때문에 내가 기준점으로 삼은 것은 과학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의 상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학에 대해 비전공자기 때문에 과학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양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이상욱이 쓴 논문을 바탕으로 삼았다. 만약 윤형님이 과학학자 또는 과학철학자들의 합의점이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파이어아벤트 한 명의 의견이 아니라(파이어아벤트도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이 자신과 입장을 달리 한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다른 권위있는 과학철학자의 리뷰를 인용하든지 아니면 스스로 현역에서 활동 중인 주요 과학철학자들의 입장을 요약, 정리해서 이상욱의 정리에 반론을 펼쳐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임상실험의 프로토콜'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윤형님은 인문학도답지 않게 텍스트를 좀 건성건성 읽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을 얘기하는 데 파이어아벤트를 언급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어쨌든 이 문제는 이 정도에서 해두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3. 김재권의 경우

나는 갑자기 윤형님이 김재권의 "심리철학"을 불쑥 펼쳐드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김재권이야말로 윤형님이 방어하려는 입장과 동떨어진 입장의 철학자 아닌가? 기왕에 데카르트주의자나 현상학자들의 입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존재를 옹호하려면 적어도 그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책을 펼치는 게 순리가 아닐런지. 내가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 수업에 기웃거리던 당시 언뜻보니 그 책을 학부 심리철학 교재로 쓰던데 아직도 그 책을 학부 교재로 쓰나보다. 어쨌든 이 책은 좋은 책이니 함께 펼쳐서 읽어보도록 하자.

지난 20여 년 동안 심리 철학은 현저하게 활기있고 흥미진진한 분야가 되었다. 이 분야는 엄청나게 성장해왔고, 마음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상당히 발전해왔다. 그동안 굉장히 많은 분량의 문헌이 쌓여왔고, 연구 논문의 출판율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붐은 금세기 중반 이후 일어난 "인지 과학"의 폭발적인 성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인지 과학은 심성(mentality)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향상시키려는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 심리학, 언어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등의 분과 학문들이 느슨하게 연합한 학제간 연구를 말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근본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심리철학의 성격을 바꿔왔다. 그리고 마음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인 연구가 과학적인 연구와 연결되는 영역도 있다. 이 영역에 들어가는 주제들 중에는 심적 표상의 문제, 심상의 문제, 합리성과 의사 결정의 문제, 언어와 언어 습득의 문제, "통속 심리학"의 성격 및 통속 심리학과 체계적인 심리학과의 관계에 관한 문제, 고전적인 인공 지능과 연결주의에 관한 논쟁 등이 들어 있다. 이러한 주제들을 적절히 다루기 위해서는 심리학과 인지과학에 대한 철학책이 별도로 나올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뒤를 이어 그러한 책이 출판될 것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은 여러 과학 분야에서 최근에 발전되어 온 주제들을 다루기보다는 전통적으로 그리고 표준적으로 심리철학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주제들에 국한하였다.

김재권, "심리철학", 하종호, 김선희 역, 철학과현실사, 1997, 2쪽

이런. 첫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내가 말했던 "개별학문에서 논의되고 인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전개하는 철학적 태도"가 자연스럽게 옹호되고 있다. 이런 분업은 철학의 활기를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심리철학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구질구질한 세부 사항은 과학에 맡겨두고 그 위에서 흥미진진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캉의 경우에서처럼 세부적인 사항을 두고 과학자들끼리 싸우는데 철학자까지 가세하여 난장판을 만드는게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4. 그건 그렇고 심리학은?

경제학과 심리학은 모두 자연과학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서 성장한 학문이지만 서로 상반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의 이론중심적 태도를 따르는 반면에 심리학은 실험중심적 태도를 따른다. 경제학자들은 우아한 수식과 그래프로 이뤄진 근사한 이론들을 가지게 되었고, 심리학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인종, 언어, 문화, 지역에서 재현되는 확고부동한 실험결과들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인가는 설령 '과학주의자'라고 해도 윤형님처럼 간단히 결론짓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론적 반실재론자인 실증주의자들은 심리학의 손을 들어주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세부적인 반론은 노정태님이 쓴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으로 대신하겠다.


5. 끝으로

얘기가 워낙 산만해서 글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워낙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얘기를 많이 인용했으니 콜레주 드 프랑스의 "과학적 개념의 철학 및 역사"좌 교수인 이안 해킹의 말로 마무리해볼까 한다.

과학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고 이야기 된다. 이론과 실험이 그것이다. 이론은 세계가 어떠한가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실험과 그 결과로 생겨나는 기술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우리는 표상하고 개입한다. 우리는 개입하기 위해 표상하고, 표상에 비춰 개입한다. 오늘날 과학적 실재론 논쟁의 대부분은 이론, 표상, 진리로 표현된다. 이러한 태도는 계몽적이되 결정적이지 못하다. 이는 부분적으로 이들 논쟁이 다루기 힘든 형이상학에 감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표상의 수준에서 실재론의 옹호를 위한 또는 반대를 위한 어떤 궁극적 논의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표상에서 개입으로 전환할 때, 니오브 공 위에 양전자 흩뿌리기로 전환할 때, 반실재론은 지배력이 약해진다. 뒤에 나오는 내용에서 나는 존재자에 관한 실재론에 대한 다소 고풍의 관심사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이것은 곧 진리와 표상, 즉 실재론과 반실재론에 대한 현대의 주요한 연구로 이끌 것이다. 끝 무렵에서 나는 개입, 실험, 존재자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철학의 최종적 중재자는 우리가 어떻게 사고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다.

이안 해킹,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 이상원 역, 한울아카데미, 2005, 83-84쪽.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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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8/03/18 08:4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8/03/18 15:29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로망 2008/03/18 22:12 #

    제가 생화학쪽 전공인데, 생물을 배울때 가장 대충 넘어가는 것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들은 과학이 뭔가라는 질문에 관심이 없지요..

    과학철학을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들중에서 나온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좀 뭐랄까 그들의 패러다임에 사실을 짜 맞추는 것 같더군요..

    저는 STS 쪽 글들이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실망했거든요,..
  • 아이추판다 2008/03/18 23:09 #

    익명1 // '소감문' 잘 봤습니다. ^^
    익명2 // 감사합니다.
    로망 // 토마스 쿤은 물리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에 과학철학으로 전환한 사람이지요. 과학철학하고 STS는 또 다릅니다.
  • 루시앨 2008/03/19 15:24 # 삭제

    논쟁 잘 보고 있습니다 :)

    제가 글을 쓸 처지가 안되는지라 리플로 개인적인 소감문을 쓰는것 죄송합니다.ㅠ

    1. 논쟁이 촉발된 부분은 첫 부분의 "메타 학문이기 때문에 개별 학문에서도 인정 받지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는 부분이고, 이 부분에서 라캉을 축출하려는 시도를 철학으로까지 확장하려고 하신 것 같습니다. 윤형님은 심리학의 방법론적 비일관성을 들어서 그러한 축출을 부정하려 하시고요.
    (1) 우선 아이추판다님이 철학에서 라캉을 축출하려는 시도는 확실히 성공하지 못한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나, 이는 낭만주의적 인식론(by Bloor) 하에서의 축출일 뿐입니다. (하지만 윤형님의 디펜스 역시 그리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라캉을 철학에서 축출하고자 한다면 메타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과학을 통해 뒷받침 된다는 부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는 노정태 님에 의해 수행되고 있지만, 역시 충분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발생사적 부분을 언급하셨는데, 이는 마치 플라톤, 아니 파르메니데스, 혹은 탈레스의 언술을 어디까지를 과학으로 보고 어디까지를 과학철학으로 볼지를 나누는것과 같습니다. 즉, 닭과 달걀의 문제이죠.)
    (2) 윤형님의 글은 '제도로서의 심리학'과 하나의 지적 체계로서의 심리학을 구분하지 않은 채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도로서의 심리학에서 라캉이 평가받는 것과 하나의 지적 체계로서의 심리학 안에서 라캉이 평가받는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패러다임 논쟁(혹은 역사)에 의해서, 후자의 경우는 현실 적합성 및 논리의 내적 정합성에 의해서 판단되게 됩니다.

    2. 여기에 지식 사회학이 들어가면 하나의 논쟁으로서 꽤나 재미있는 삼파전이 될것 같습니다. 그중 하나인 에든버러 학파의 경우는 지식이 (그리고 과학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인정하고, 대신 그러한 인식론이 단순한 선전선동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과학을, 지식을 신비화(신비화의 의미는 뒤르켐이 종교에 대해 구분할 때 쓴 성과 속을 구분하는 의미입니다.)하는 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하죠. (그 예로 포퍼, 버크, 쿤의 입장을 각각 계몽주의, 낭만주의(+지식의 신비화 시도), 낭만주의로 구분합니다.) 이런점에서 아이추판다님의 논의는 계몽주의적 입장이나 약간의 신비화가 곁들여진(심리학 내부 논의에 대해서의 입장이 그렇습니다.), 한윤형님의 논의는 낭만주의적인, 노정태님의 경우는 계몽주의적이고 직접적으로 신비화가 곁들여진(과학과 철학의 구획을 지정하고, 과학은 그자신이 하는것을 한다고 직접적으로 못박고 계시죠.) 논의가 됩니다. 이런 주장을 할 때는 구체적으로 글을 써서 지적하는게 예의이고 설득력이 있겠지만, 개인 사정상 참여는 하고 싶은데 시간이 도저히 안나서 부득이하게 리플로 남깁니다.ㅠ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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