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7일
1000명
라캉은 1000명 이상의 환자를 상대한 최고의 임상의였습니다. 또 그 권위는 적어도 한다락 글로서 정리되는 그런 것은 결코 아닙니다.
출처: 어디서 본 댓글오늘날까지 MMPI에 관해서는 45개 나라에서 115종류 이상의 번역판이 출판되어 있고 12,000가지 이상의 연구논문이나 저서가 발표되어 있다.
출처: "다면적 인성검사: MMPI의 임상적 해석"(김중술, 서울대학교출판부)참고로 1988년 한국임상심리학회가 한국어판 MMPI 개정을 위해 조사한 사람은 모두 4149명.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지?
# by | 2008/03/17 10:32 | 트랙백(1) | 핑백(2)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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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
1. “어떤 사람은 라캉이 심리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라고 하겠지만, 철학은 메타 학문이기 때문에 개별 학문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내용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라캉을 적어도 심리학과 대상을 공유하는 영역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주장을 '과학주의'라고 부를 과학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는 논쟁 전의 아이추......more
... 한 얘기를 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보는 편견을 심어주었다. 물론, 그 해 그 수업에서만 국한되었던 사건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1. 쿤의 경우 다음은 1000명에 윤형님이 단 댓글이다. 과학철학을 오해하신 건 아이추판다 님이죠. 아마 과학학자나 과학사회학자들과 가까운 쪽의 학자들만 봐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진짜로 과학이 어째서 ... more
... ) 논쟁의 효과,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한윤형) 프로이트, 융, 라캉(아이추판다) 라캉 위에 그어진 선(아이추판다) 라캉을 읽지 않겠다 - 한국라깡학회 저널을 보고(새로운 세상) 1000명(아이추판다) 라캉적 임상 진단 및 치료(노정태)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아이추판다)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한윤형)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노정태) 쿤, 과학 ... more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정신역동적 접근법의 치료 효과는 결코 다른 접근법보다 높지 않다. 임상적인 입장에서 라캉의 성과를 논의하려면 프로이트에서 뭘 빼고 뭘 넣었다는 구구한 얘기를 할 필요없이 치료 효과 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구체적인 내용은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할 일이다. 정신분석학이 환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자체는 좋다. 만약 이것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만큼 치료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이 치료효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정신분석학은 "관심은 있지만 실제로는 못하는" 무능한 관심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정신분석학은 치료 효과가 별로 없으므로 '듣보잡' 취급을 해도 무난하다는 것.
이런 판단에 대해 정신분석학이 제기할 수 있는 가장 radical한 물음은 이것입니다. '치료'란 무엇인가? 사회에 정상적으로 적응시키는 과정? 그런데 환자를 되돌려 보내는 목적지인 사회 자체가 정상이 '아니'라면? 사회 자체가 병에 걸린 것이라면? (히스테리가 병인가, 히스테리를 낳은 가부장제 사회가 병인가라는 질문은 정신분석학의 탄생 자체에 깊이 박혀 있는 상흔 같은 것입니다.)
이건 질문이자 화두입니다. 적어도 라캉-지젝의 맥락을 따르자면, 오직 정신분석학만이 감당하는 질문이자 화두이지요. (물론 라캉이나 프로이트가 임상을 대단히 중요시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도 그쪽으론 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이므로 판단 유보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신분석학의 임상적인 무능함에 대해서는 아이추판다 님의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라고도 하고 싶습니다.) 이런 질문이 걸려 있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은 헤겔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철학과도 맥이 닿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심리학(특히 미국식 심리학)은 저런 질문을 제기할 능력도 감당할 능력도 없습니다.
더 깊이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그럴 능력도 시간도 없습니다. 다만 아이추판다 님의 비판이 아무리 자신만만하고 강경해도 정신분석학 자체가 제기하는 radical한 물음의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 이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그러니 라깡이나 랭 자신은 자기 임상 이론이 치료 효과가 있는가의 여부 따위에는 당연히 아무런 신경도 안 썼을 겁니다. 반정신의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미친 사람의 언어와 동일하다고도 여겼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둘 다 사회 주류에 의해 들을 가치가 없는 무엇으로 폄하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주류 의학에 맞서고 합리성의 신화에 반기를 드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런 방법을 취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전 라깡의 임상 의학을 현대 과학 기준으로 유용하네 마네 공격하거나 옹호하는 건 라깡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진짜로 비판을 하고 싶다면 정상 과학이나 합리성의 가치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라깡의 반과학주의 그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요.
물론 아래에선 반과학주의를 비판하셨네요. 그리고 과학학자들이 실은 과학에 굉장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동의하기 힘든 것이, 토머스 쿤만 생각해봐도 그가 과학과 합리성의 가치에 대해 그렇게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쿤은 어차피 어느 특정 시대에선 어느 것이 진정으로 옳은 과학 패러다임인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고, 합리성을 신봉하는 포퍼가 애초에 쿤더러 비합리주의자라며 그토록 열띠게 비판했던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리고진도 같은 이유로 쿤에게 '어느 정도는 동조할 수 없다'라고 적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라캉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어설프게 과학철학을 인용한다고 보거나 소칼이 과학철학자들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쿤과 그 분파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들은 옳은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흠, 어쨌든, 곧 트랙백을 하나 보낼 생각입니다.
pinacolada // "과학학자들이 실은 과학에 굉장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은 제가 한 게 아니고 이상욱이 한 말입니다. 그는 서울대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하고 한양대에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과학철학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썼으니 과학학자로 불러도 크게 유감은 없을 것입니다. 과학학자 스스로가 자신들이 그렇다는 데 제가 뭐하러 토를 달겠습니까. 쿤을 언급하시니 그 자신이 밝힌 입장이 구체적으로 어떠한가는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거두절미하겠습니다. 위에서 쓴 내용은 저의 '개인적 해석'이 아닙니다. <The Metastases of Enjoyment향락의 전이>, 1장에서 지젝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번역이 안 좋다는 소문이 많습니다. 혹시 읽으실 마음이 있으면 원서로 보시길 바랍니다.) 논쟁 차원이 아니라 정보 제공 차원에서 적습니다. 이것조차 지젝만의 '개인적 해석'이라 하고 그냥 넘어가셔도 물론 상관은 없습니다. 어차피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은 화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논쟁에 끼어든 이유는 그런 화해할 수 없는 부분을 적시하고 싶은 거였지 논쟁으로 아이추판다 님을 이기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여기가 그런 자리도 아니고 제가 그런 위치도 아니니까요.
님이 쓰신 글을 보면 "라캉은 최소한 임상용 의학은 아니다."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게 모욕이라고 생각하시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한 단계 더 나아가 "라캉은 과학이 아니다."도 동의하실 것 같구요.(과학의 엄밀한 정의는 차치하고 일반적인 용법상으로는.) 음양이원론으로 사람은 못 고치지만 예술 평론 같은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라캉은 철학 등 다른 영역에선 유효할 수 있겠죠. 과학이 가장 우월한 학문이라고 주장된 것도 아니고.(가장 유효한 학문이라는 뉘앙스는 있었어도, 그게 현장연구자로서 못 할 말 같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왜 그걸 따져야 하는지.)
그런데 왜 그 다음에 "심리학도 사실은 하드한 과학은 아니다"나 "현재의 심리학이 유일한 가능해는 아니다"나 "과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논의가 나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심지어 "아이추판다님(심리학)은 과연 라캉에게 공정했는가?", ""아이추판다님은 과학물신주의자인가" 논의까지. (그게 물론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관전자로선 별로.) 사실 파이어아벤트까지 불려나오는 것을 보고 그만 아연실색해 버렸습니다. 정말로 저 메타적 도약과 인물비평, 논술지도가 원래 논의를 진행하는 효율적인 그리고 성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이 다음에 나올 논의 방법은 "지금까지 심리학적 치료 효과가 경험적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미래의 치료 효과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경험주의적 오류 지적인가요? 왜 이렇게 말하는지 아실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pinacolada님이 지적한 대로가 정답일 수 있습니다. 라캉의 임상학은 기존의 임상학에서 스스로 소외되었고, 사실 이 소외의 원인은 라캉 자신이 정신분석을 윤리적 심급의 문제로 거론할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환자의 증상을 제거하기만 하는 자아심리학과 행동치료등은 라캉이 보기에 정신분석의 정답은 아니었던거죠. 스스로 정신분석은 심리학이 아니라고 못박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두 전선간에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추판다 블로거님이 제기한 라캉 임상학이 과학이냐는 질문에 '속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라캉 임상학이 무효한 것은 아니지요. 이는 과학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적어도 라캉 임상학은 자신의 준거안에서 환자들을 다뤄왔고, 라캉이 1000회 이상의 경험을 가지고 있듯이 상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과학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문제 설정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캉은 환자를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그런 '정상적인' 사회 생활로의 복귀가 분석의 종료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라캉적 주체, 즉 분석 끝에 도달한 주체는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분석하고, 그 모순을 받아들이는 자기 혁명적 주체에 가깝습니다. 분석가가 환자에게 전이를 이끌어 내는 방법부터가 그렇지요. 라캉 임상학에서 분석가는 섯부른 행동을 자제합니다. 역전이 현상도 통제하고, 정념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지요. 라캉은 이런 분석가를 텅빈 스크린이라고 표현하지요. 라캉의 언어로 분석가는 대상a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평균적인 정신분석과 목표와 문제의식이 다르다는 것은 명백하지요. 정상성이 아니라 탈정상성의 긍정, 기만이 아니라 돌파, 단언이 아니라 의문등등.. 이건 라캉 생애에 걸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과학이냐 비과학이냐의 논의에서 라캉은 잡히지 않습니다. 라캉은 스스로 과학적이길 포기하면서도 반대로 정신분석을 무의식에 관한 과학이라고 정의하지요. 즉 라캉의 말을 종합해보면 무의식을 분석하려면 과학적 사고로는 불가능하다는게 아닐까요.
라캉은 그 자체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제3자인 제가 보기엔, 아이추판다님은 "라캉이 왜 과학이 아닌가."에 중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시고 있고, 윤형님은 "라캉이 과학이 아니라고, 철학(메타 학문?)도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에 중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철학인지 아닌지는 과학 영역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철학 영역에서 정해진다?) 일종의 범주 침범 지적. 윤형님 입장에선 충분히 할 만한 문제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애초 논의의 불명확한 부분은 두 분 모두 명확히 정리하시고(아 : "라캉은 과학이 아니야.", 한 : "ok, 라캉은 과학 아니야." 아 : "그러니까 라캉은 철학(메타 학문)도 아니야.", 한 : "no,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어.왜냐하면~") 계속 논의 범주를 확장해 가는 편이 서로에게도, 그걸 보는 입장에서도 더 좋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논의의 연속된 확장과 메타화, 환원화 자체가 윤형님의 원래 논점을 드러내주는 방법론일 수 밖에 없다고 가정해도. 게다가 아이추판다님은 애초에 그 형이상학적, 메타화 과정을 따라갈 마음이 없어 보입니다. 라캉만 과학 영역에서 아예 배제하시려다보니 '발본색원' 심정으로 철학 영역까지 욕심을 내신 것 뿐. 윤형님은 그것을 부당하다고 보시는 것 같고. 그걸 규명하는 논의도 의미 있지요.
그렇다면 (김규항식'선빵론'을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상대방의 무지나 방심에서 비롯되었다고 의심되는 '반칙타'에 대해 같이 아슬아슬한 반칙타를 날리기보다는, 그것이 반칙이라고 선언하고 그 반칙성을 규명하는 정식 플레이를 하셨더라면 더 멋졌을 것 같습니다. 세부 현장 필드에선 오류라고 검증된 것을 가지고도 메타 학문에서는 여전히 생산적인 이론을 만들 수 있었던 관련 사례 제시라던지. 그런 사례 검증이나 실증이 힘들면(이건 과학적 방법론으로 보이니) 왜 덜 메타화된 이론의 진위가 더 메타화된 이론의 진위를 결정할 수 없는지 형이상학적 이론 전개만이라도. 그럼 보는 입장에서는 더 생산적인(더 배울 수 있는) 논의가 진행되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아이추판다님의 공정함이나 반칙 여부 같은 것은 입증되거나 반증되어도 그리 중요한 문제 같지는 않아서.(물론 당사자들에겐 꽤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런데 미학이론이나, 문학비평 같은 부분에서는 라캉주의적인 분석이 굉장히 유용하게 보이더라구요; 어떤 분이 뉴먼의 <숭고>를 라캉의 언어이론으로 분석한 글을 보았습니다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동감했습니다.
음... 그래서 질문은... 미학에서의 라캉같은 것은 어떻게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