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6일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
창조론, 한의학이나 라캉 류의 정신분석학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설프게 과학철학을 인용하면서 현재의 과학과 '다른' 과학의 존재가능성을 인정하라고 윽박지르곤 한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이 유일한 과학이 아니고 다른 과학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이런 반과학들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주장을 비판하면 '과학주의'라는 딱지가 곧잘 붙는다. 내가 라캉을 적어도 심리학과 대상을 공유하는 영역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경험적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주장을 '과학주의'라고 부를 과학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과학철학자, 과학사학자, 과학사회학자 등 과학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상이 어떤 것이며 이들이 진정한 과학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인용할 텍스트는 이중원 등이 엮은 "인문학으로 과학읽기"에 실린 이상욱의 "과학연구의 역사성과 합리성"이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이상욱은 소칼 논쟁에서 소칼이 공격했던 두 집단,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과학학자들 중에서 후자의 입장과 소칼과 같은 과학주의자들의 입장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한다.
소칼은 과학학자들이 인식론적 상대주의자들이며 반과학주의자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상욱은 이런 혐의가 오해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주의자들과 과학학자들 모두 과학에 대해 대단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임을 지적한다. 이점에서 반과학주의자들은 소칼과 마찬가지로 과학학자들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과학이 합리적인 활동이라는 데 동의한다. 차이는 '합리적'이라는 말의 범위다. 과학주의자들은 '합리적'이라는 말을 대단히 좁은 의미만으로 사용하는 반면, 과학학자들은 훨씬 넓은 범위로 사용한다.
나는 소칼과 같은 과학주의적 입장이 도리어 반과학주의자들의 좋은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반과학주의자들은 이상적인 과학 활동과 현실의 과학 활동을 대립시켜 과학을 깎아내리는 데 사용한다. 그러나 이상욱이 정리하는 바에 따르면 라투어와 같은 과학학자들은 현실의 과학 활동 또한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인정한다. 오히려 라투어 등의 논의야말로 과학을 반과학주의자들로부터 방어해주는 것이다.
소칼의 관점에서 증거로부터 어떤 과학외적 요소의 개입도 없이 이론이 도출되기 때문에 과학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치든지 항상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 라투어 등의 과학학자들은 과학외적 요소의 합리적 개입을 인정하므로 역사적 과정에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우발적 요소에 따라 과학은 다른 모습을 띌 수도 있게 된다.
피커링의 관점을 다시 풀어서 쓰자면 제한조건 내에서 엇비슷한 이론들끼리 경쟁하는 상황에서 과학 외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따라 과학자들이 수용하는 이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 외적 요소만큼이나 강조해야할 부분은 제한조건 내에서 엇비슷한 이론들끼리 경쟁한다는 점이다. 반과학주의자들은 종종 이런 제한조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의학이나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은 임상 이론으로서 제한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상 과학외적 요소를 들먹일만한 자격도 없다. 게다가 피커링은 다른 과학학자들에 비해서도 제한조건을 좀 더 느슨하게 잡는 다는 것 또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결론짓자면 과학학자들은 반과학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에 대한 이론들 사이에 무차별적인 동등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주어진 제약조건 내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가능한 합리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과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과학학자들의 주장이다. 반과학주의자들은 주류 과학에는 지나치게 좁은 범위의 합리성과 제약조건을 부과하면서 자신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유사과학적 언설들에 대해서는 반대로 지나치게 관대한 범위의 합리성과 제약조건을 용인하는 데 이런 이중적인 행태는 과학학자가 아니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비판하면 '과학주의'라는 딱지가 곧잘 붙는다. 내가 라캉을 적어도 심리학과 대상을 공유하는 영역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경험적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주장을 '과학주의'라고 부를 과학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과학철학자, 과학사학자, 과학사회학자 등 과학학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상이 어떤 것이며 이들이 진정한 과학주의자들과 어떻게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여기에서 인용할 텍스트는 이중원 등이 엮은 "인문학으로 과학읽기"에 실린 이상욱의 "과학연구의 역사성과 합리성"이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이상욱은 소칼 논쟁에서 소칼이 공격했던 두 집단, '포스트모더니스트'와 과학학자들 중에서 후자의 입장과 소칼과 같은 과학주의자들의 입장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한다.
소칼은 과학학자들이 인식론적 상대주의자들이며 반과학주의자라는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상욱은 이런 혐의가 오해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주의자들과 과학학자들 모두 과학에 대해 대단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임을 지적한다. 이점에서 반과학주의자들은 소칼과 마찬가지로 과학학자들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종적으로 과학학 연구자들이 반과학적이라는 주장은 아주 간단하게 풀 수 있는 오해이다. 대부분의 과학학 연구자들은 과학에 대한 열광적인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과학이 많은 경우에 축적적인 성장을 한다고 믿으며 과학 활동이 매우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음에 대해서도 인정 이상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중략)
이상의 논의를 통해 필자는 소칼논쟁에서 크게 쟁점화되었고 과학자들과 과학 활동을 연구하는 사람들 모두를 필요 이상으로 흥분시켰던 논점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음을 보였다. 두 진영 모두 과학이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며, 상호주관적인 방식으로 과학연구가 수행되며, 대부분의 경우에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이론 결정이나 합의 도출이 이루어지며, 많은 경우에 과학은 축적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두 진영 모두 과학을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활동으로 여긴다.
(중략)
이상의 논의를 통해 필자는 소칼논쟁에서 크게 쟁점화되었고 과학자들과 과학 활동을 연구하는 사람들 모두를 필요 이상으로 흥분시켰던 논점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큰 문젯거리가 아니었음을 보였다. 두 진영 모두 과학이 객관적 실재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며, 상호주관적인 방식으로 과학연구가 수행되며, 대부분의 경우에 이치에 맞는 방식으로 이론 결정이나 합의 도출이 이루어지며, 많은 경우에 과학은 축적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두 진영 모두 과학을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는 활동으로 여긴다.
이들은 모두 과학이 합리적인 활동이라는 데 동의한다. 차이는 '합리적'이라는 말의 범위다. 과학주의자들은 '합리적'이라는 말을 대단히 좁은 의미만으로 사용하는 반면, 과학학자들은 훨씬 넓은 범위로 사용한다.
합리적이라는 말 역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합리적이 무엇이냐를 정의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대개 도구적 합리성이라고 구체화된 합리성은 주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효과적인 수단이 존재할 때 그들 간의 목적-수단 관계를 규정하는 데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과학자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든지 자신의 이론을 과학자 사회에 퍼뜨리는 데 성공했고 그것이 그 과학자의 목적이었다면 여전히 합리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칼에 따르면, 라투어 등은 이런 류의 주장으로 과학자들이 특정 정치,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과학연구를 오용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라투어나 콜린스 등이 사용하는 합리성의 개념은 이런 도구적 합리성보다는 좀더 인식론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 '합리적인' 이론선택이란, 증거와 여러 가설 간의 관계를 이치에 맞고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살펴보고 그 중 한 가설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적절한' 증거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한 후에, 그 증거들에 비추어 여러 경쟁하는 가설들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특정 가설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과학연구가 수행될 때 이를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소칼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랍게 들리겠지만, 대다수의 과학학 연구자들은 이런 좀 더 강한 의미에서도 과학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두 진영 사이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까? 차이는 받아들일만한 증거로 어떤 것을 허용하는가에 달려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칼 진영은 오직 경험적인 증거만을 허용하는 데 비해, 과학학 연구자는 과학 활동에 내재하는 가치의 역할,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국소적 환경의 특수성, 사회적 네트워크 등의 좀더 포괄적인 요소를 받아들일 만한 증거로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소칼은 과학의 본질을 완결되어 출판된 논문이나 책들의 모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 과정에서는 수많은 오류와 비합리적인 추론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과학연구의 평가 과정은 항상 잘 다듬어져서 제시된 실험 결과와 이론 결과 사이의 일치 여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과학의 합리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좁게 해석된 이런 종류의 증거와 이론 간의 관계 이외에 어떠한 요소도 원칙적으로는 '비합리적'이다. 가령 과학자가 다른 한 저명한 과학자의 명성에 기반해서, 시간적 여유도 없고 해서, 그의 논문을 꼼꼼히 검토도 해보지 않고 인용했다면,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비합리적'인 행동일 수 밖에 없다. 이상적인 과학 활동은 어떤 종류의 과학 외적인 요소도 배제된 채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만 과학의 합리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라투어는 과학활동이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 내에서 벌어지는 활동임에 주목한다. 그가 깔끔하게 정리된 최종 논문보다는 현재 입장 정리가 안 된 논쟁들에 집중하여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는 데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이런 논쟁 과정에서는 아직 무엇이 '옳은' 의견인지가 완전히 합의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상황적 합리성'에 따라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적 합리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수행하는 작업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라투어나 콜린스 등이 사용하는 합리성의 개념은 이런 도구적 합리성보다는 좀더 인식론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 '합리적인' 이론선택이란, 증거와 여러 가설 간의 관계를 이치에 맞고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살펴보고 그 중 한 가설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적절한' 증거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한 후에, 그 증거들에 비추어 여러 경쟁하는 가설들의 장단점을 고려하여 특정 가설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과학연구가 수행될 때 이를 합리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소칼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놀랍게 들리겠지만, 대다수의 과학학 연구자들은 이런 좀 더 강한 의미에서도 과학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두 진영 사이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일까? 차이는 받아들일만한 증거로 어떤 것을 허용하는가에 달려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소칼 진영은 오직 경험적인 증거만을 허용하는 데 비해, 과학학 연구자는 과학 활동에 내재하는 가치의 역할, 과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국소적 환경의 특수성, 사회적 네트워크 등의 좀더 포괄적인 요소를 받아들일 만한 증거로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소칼은 과학의 본질을 완결되어 출판된 논문이나 책들의 모임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구 과정에서는 수많은 오류와 비합리적인 추론들을 사용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과학연구의 평가 과정은 항상 잘 다듬어져서 제시된 실험 결과와 이론 결과 사이의 일치 여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과학의 합리성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좁게 해석된 이런 종류의 증거와 이론 간의 관계 이외에 어떠한 요소도 원칙적으로는 '비합리적'이다. 가령 과학자가 다른 한 저명한 과학자의 명성에 기반해서, 시간적 여유도 없고 해서, 그의 논문을 꼼꼼히 검토도 해보지 않고 인용했다면,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비합리적'인 행동일 수 밖에 없다. 이상적인 과학 활동은 어떤 종류의 과학 외적인 요소도 배제된 채 이루어져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만 과학의 합리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라투어는 과학활동이 구체적인 사회적 조건 내에서 벌어지는 활동임에 주목한다. 그가 깔끔하게 정리된 최종 논문보다는 현재 입장 정리가 안 된 논쟁들에 집중하여 자신의 연구를 수행하는 데서도 이 점이 드러난다. 이런 논쟁 과정에서는 아직 무엇이 '옳은' 의견인지가 완전히 합의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일종의 '상황적 합리성'에 따라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상황적 합리성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수행하는 작업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
나는 소칼과 같은 과학주의적 입장이 도리어 반과학주의자들의 좋은 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반과학주의자들은 이상적인 과학 활동과 현실의 과학 활동을 대립시켜 과학을 깎아내리는 데 사용한다. 그러나 이상욱이 정리하는 바에 따르면 라투어와 같은 과학학자들은 현실의 과학 활동 또한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인정한다. 오히려 라투어 등의 논의야말로 과학을 반과학주의자들로부터 방어해주는 것이다.
소칼의 관점에서 증거로부터 어떤 과학외적 요소의 개입도 없이 이론이 도출되기 때문에 과학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치든지 항상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면 라투어 등의 과학학자들은 과학외적 요소의 합리적 개입을 인정하므로 역사적 과정에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우발적 요소에 따라 과학은 다른 모습을 띌 수도 있게 된다.
논란거리가 되는 부분은, 소칼이 비판하는 과학학자들 중 많은 수가(특히, 과학사회학자들) 이런 종류의 질문-우발성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과학의 역사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들은 자연세계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가 결정된 이후에도, 그리고 과학 활동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과학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은 과학연구의 내용-우발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피커링은 현대 입자물리학이 반드시 쿼크에 기반한 이론을 택해야 할 필연성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와 다른 이론 체계를 선택할 가능성이 초기 이론 선택 단계에서는 충분히 열려있었다. 다양한 이론들 중에서 쿼크에 기반한 이론이 선택된 것은 반드시 '자연 현상'이나 '실험 결과'에 의해서 압도적으로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관련 과학자 집단이 여러 요인을 고려한 후 내린 사회적 결정이었다고 피커링은 주장한다(Pickering,1984). 이 주장을 평가할 때 한 가지 조심할 점은 피커링이 과학자들이 외부적 실재가 부여하는 아무런 제한조건이 없이 이론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거나, 쿼크가 실재하지 않는 순수한 허구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쿼크에 기반한 이론이든 그렇지 않은 대안적 이론이든 그것이 성공적인 물리이론이기 위해서는 설명하고 수용해야할 일정한 입자물리학적 현상들이 존재했고 일반적으로 이를 수용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각각의 이론 전통은 각자의 이론적 틀에 고유한 이론적 도전을 극복해야 하고, 모든 이론들이 항상 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연구의 환경들은 과학연구의 결과에 대해 일정한 '제한(constraint)'을 부여한다. 하지만 피커링은 자연세계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제한조건들이 쿼크 이론을 우리에게 강요할만큼 강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주어진 질문에 대한 해답의 수준에서도 우발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소칼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다른 과학학 연구자들에게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예를 들어 피커링은 현대 입자물리학이 반드시 쿼크에 기반한 이론을 택해야 할 필연성은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와 다른 이론 체계를 선택할 가능성이 초기 이론 선택 단계에서는 충분히 열려있었다. 다양한 이론들 중에서 쿼크에 기반한 이론이 선택된 것은 반드시 '자연 현상'이나 '실험 결과'에 의해서 압도적으로 강요된 것이라기보다는 관련 과학자 집단이 여러 요인을 고려한 후 내린 사회적 결정이었다고 피커링은 주장한다(Pickering,1984). 이 주장을 평가할 때 한 가지 조심할 점은 피커링이 과학자들이 외부적 실재가 부여하는 아무런 제한조건이 없이 이론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거나, 쿼크가 실재하지 않는 순수한 허구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쿼크에 기반한 이론이든 그렇지 않은 대안적 이론이든 그것이 성공적인 물리이론이기 위해서는 설명하고 수용해야할 일정한 입자물리학적 현상들이 존재했고 일반적으로 이를 수용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각각의 이론 전통은 각자의 이론적 틀에 고유한 이론적 도전을 극복해야 하고, 모든 이론들이 항상 이 도전을 성공적으로 막아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세계를 비롯한 다양한 과학연구의 환경들은 과학연구의 결과에 대해 일정한 '제한(constraint)'을 부여한다. 하지만 피커링은 자연세계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제한조건들이 쿼크 이론을 우리에게 강요할만큼 강력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주어진 질문에 대한 해답의 수준에서도 우발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소칼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다른 과학학 연구자들에게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피커링의 관점을 다시 풀어서 쓰자면 제한조건 내에서 엇비슷한 이론들끼리 경쟁하는 상황에서 과학 외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따라 과학자들이 수용하는 이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과학 외적 요소만큼이나 강조해야할 부분은 제한조건 내에서 엇비슷한 이론들끼리 경쟁한다는 점이다. 반과학주의자들은 종종 이런 제한조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의학이나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은 임상 이론으로서 제한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상 과학외적 요소를 들먹일만한 자격도 없다. 게다가 피커링은 다른 과학학자들에 비해서도 제한조건을 좀 더 느슨하게 잡는 다는 것 또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결론짓자면 과학학자들은 반과학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에 대한 이론들 사이에 무차별적인 동등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주어진 제약조건 내에서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여 가능한 합리적인 활동을 전개하여 과학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과학학자들의 주장이다. 반과학주의자들은 주류 과학에는 지나치게 좁은 범위의 합리성과 제약조건을 부과하면서 자신들이 옹호하고자 하는 유사과학적 언설들에 대해서는 반대로 지나치게 관대한 범위의 합리성과 제약조건을 용인하는 데 이런 이중적인 행태는 과학학자가 아니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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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03월 17일 links for 2008-03-16 Filed under: delicious — intherye @ 7시 18분 Null Model :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 저 같은 찌질이는 그냥 쉽게쉽게 “언제 만날지 모르는 외계인에게 내놓아도 쿠사리 먹지 않을만한 지식체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 more
... 그러나 그가 과학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냐고 묻는다면 누구라도 고개를 저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파이어아벤트는 분명히 과학철학의 스펙트럼에서 한 쪽 끝에 위치한다. 나는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라캉을 적어도 심리학과 대상을 공유하는 영역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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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최근 유행하는 neurochemistry를 공부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로망 // 정신분석학으로 치료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죠.
하늘선물 // HTML 편집에서 원하시는 문단을 div 태그로 둘러싸고 적당한 스타일을 지정해주면 됩니다. 제 경우엔 <div style="background: ivory; border: 1px solid; padding: 1em"></div>를 사용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검색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