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4 02:47

라캉 위에 그어진 선 유사학문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한윤형)
일관성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
프로이트, 융, 라캉

1.

한윤형님은 일관성의 내용을 잘못 이해하신게 아닌가 싶다. "신약에 대한 임상실험 프로토콜을 폐지"라는 말을 어떻게 "신약개발을 금지"한다고 읽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다시 설명하자. 모든 치료는 철저한 경험적 검증, 다시 말해 자연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검증을 요구한다. 어떤 치료법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치료법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다가 올바른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쳐 건강을 해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약의 경우 정해진 프로토콜에 따라 임상실험을 거치고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끝난 후에야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 환자에게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약에 대한 경험적 검증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심리치료에 대한 경험적 검증도 당연하다. 한윤형님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서 심리학이 포용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말하지만, 당연한 검증을 포기하는 것은 포용성이 아니라 무원칙에 지나지 않는다.

2.

"한국 라캉과 현대정신분석학회"라는 곳이 있다. 한윤형님이 여러 차례 언급한 홍준기씨도 여기 회원이고 임원을 여러 차례 지낸 걸 보니 적어도 이쪽에서는 나름 명망있는 집단일 것이다. 이 '학회'의 회칙 2조는 다음과 같다.

라깡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현대 정신분석의 이론과 치료요법을 연구함으로써 정신의학, 심리학, 문학, 문화학, 사회학, 사회복지학, 언론학, 문예 및 영화비평, 미학, 법학 등 학문의 지평을 비판적으로 포괄하고, 현대의 사상 흐름에 연계하여 인간과 문화의 분석을 위한 새로운 이론과 방법론의 창출, 나아가 정신질환의 치료기술의 개발에 기여하고자 한다.

한윤형님은 한 댓글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라캉이 유행한 과정으로 볼 때, 라캉 모른다고 막장이라고 했던 그분이 라캉의 임상의로서의 유능함을 근거로 내세웠을 것 같진 않"다고 했지만 적어도 이 학회에 한정하자면 치료의 수단으로서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비평의 수단으로서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그렇게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캉에게는 철학과 심리학이 한 몸이므로 심리학 쪽에서 창으로 찌르면 철학 쪽까지 꿰뚤릴 수 밖에 없다. 한윤형님의 말대로 지성세계의 지도에 선을 정확히 그으면 그 선은 라캉의 이론 위에 그어질 것인데, 그렇다면 라캉을 심리학 쪽으로 차주던지, 철학 쪽으로 데려가든지 아니면 임상과 비평을 두동강 내어 비평만 가져가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라캉이 임상의 권위를 들고 철학의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한 번 환영한 다음에 심리학을 들고 그 길을 뒤쫓아 가면 반칙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일관성도 설득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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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동물원 2008/03/14 06:52 # 삭제

    침팬치를 모르는데 한의학은 어째 알수 있겠냐는 막장도 있는데, 라캉을 모른다고 막장이라 하다니..그분이 너무 심하셨군요..
  • 윤형 2008/03/14 07:16 # 삭제

    님이 저를 통해 라캉주의자들을 꿰뚫을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의미의 라캉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임상의로서의 라캉이 붕괴한다 하더라도 형이상학자로서의 라캉은 붕괴하지 않습니다. 그 점에 대해 저는 충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두 사안은 분명 분리될 수 있습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를 생각해 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은 뉴튼 물리학에 의해 명백하게 반박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과 같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물리학의 사례들을 통해 형이상학을 도출했을 거라고 추론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이 바로 그 이유로 인해서 붕괴되었다고 말하는 철학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리스토테렐스 형이상학은 신뢰되기도 하고 불신되기도 하지만, 그 근거에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의 신빙성은 나오지 않습니다.

    라캉이 임상의 권위를 들고 철학의 영역에 들어온 것은 굉장히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가 죽은 것도 이미 25년 전의 일인 걸요. 그리고 지금의 라캉은 근대 이후 모든 철학자들에게 철학적인 주석을 단 어떤 학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부정하시고 심리학의 길로 그를 격파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 얘기가 안 됩니다. 한 학자가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얘기하는 것과, 그 학자의 가치는 다른 것이거든요. 이건 라캉 뿐만이 아니라 학문의 역사에 흔한 일입니다.

    다만 홍준기 선생님을 포함한 한국의 라캉주의자들, 그리고 아마도 프랑스의 라캉주의자들 역시 임상의를 포함한 라캉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그들은 대개 브루스 핑크를 근거로 라캉의 임상을 옹호하고, 지젝을 들어 라캉의 문예비평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이 효과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임상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아이추판다 님과의 논쟁에서 계속 그 지점을 피했습니다. 이건 회피가 아니라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 논쟁은 할 수 없으니까 그런 거죠. 그렇지만 그 지점을 피하더라도 논점이 있기 때문에 계속 논쟁을 한 겁니다. 그러니 바로 그 지점에 유감이 있으시다면 아이추판다 님은 그 사람들과 논쟁을 해야 겠죠.

  • 윤형 2008/03/14 07:20 # 삭제

    여하간 생산적인 논쟁이었습니다. 저는 라캉에 대해서 절반 정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데,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어제 노정태 님과도 술마시면서 이 논쟁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노정태 님은 아마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서 올릴 생각인 것 같습니다.
  • 아이추판다 2008/03/14 10:30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는 자연학과 형이상학의 분리가 철학과 과학 양쪽에서 합의가 끝난 일이지만, 라캉에 대해서는 그런 합의가 이뤄져있지 않습니다. 라캉주의자들이 그런 합의를 거부하고 있죠. 제 얘기는 이런 현실적 지형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분리하든가 같이 붕괴하든가" 양자택일하라는 것인데 윤형님은 "분리할 수 있으니 같이 붕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군요. 어쨌든 이 논의는 이정도면 충분히 한 것 같습니다.
  • 노정태 2008/03/14 23:28 # 삭제

    아이추판다 님의 논의에 상당히 동의합니다. 블로그에 트랙백 기능이 없어서, 제가 쓴 글의 링크를 리플에 남깁니다.

    http://basil83.blogspot.com/2008/03/blog-post_1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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