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유사학문
핑백
Null Model :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2008-03-12 01:07:01 #
...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이 아니라는 댓글에 대해 첫째, 마음을 다루는 학문을우리가 심리학(psychology)이라고 한다면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이 마 ... more
Null Model : 일관성 2008-03-13 10:36:48 #
...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한윤형) 한윤형님의 글에 답변하자면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다. 요컨대 일관성. 첫째. WHO의 보고에 따르면 ... more
Null Model : 라캉 위에 그어진 선 2008-03-14 02:47:18 #
...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한윤형) 일관성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 프로이트, 융, 라캉 1. 한윤형님은 일관성의 내용을 잘못 이 ... more
Null Model : 라캉, 과학, 철학 관련글 목록 2008-03-23 23:06:20 #
... 너무 글들이 많아서 일단 목록 정리. 빠진 것, 순서 잘못된 것 있으면 댓글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한동안 최상단에 표시됩니다) 1.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아이추판다) 2.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아이추판다) 3.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한윤형) 4. 라캉 논쟁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노정태) 5. 일관성(아이추 ... more
Null Model : 2009년 대학 새내기 추천도서 2009-02-27 14:45:41 #
... 11"을 추천한 바 있다. 새내기 추천도서에도 아마 김상환이 넣었을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2월의 읽을만한 책"까지는 그렇다쳐도 새내기 추천도서에 넣는 건 오버라고 본다. 라캉을 모르면 막장이라고 생각하는 건 학부생의 좁은 소견만이 아니라 그 바닥 돌림병인 모양이다. 라캉도 라캉이지만 다른 책들도 좀 어이가 없는데 데리다, 아렌트, 홉스봄, 쿤, 바슐라르 ... more
World View Pro 자료 사이트 : 2009년 대학 새내기 추천도서 2009-02-27 20:50:22 #
... 라캉을 모르면 막장 ... more
덧글
특히 후기 구조주의 학자들을 단순한 접근으로만 보려 한다면 앨런 소칼의 '지적사기'같은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차라리 빌헬름 라이히를 모른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질수 있겠군요.
하늘선물 // 말년의 행적을 본다면 빌헬름 라이히도 모르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비공개 // ^^;
kimdan, caya // 그 이름을 블로그에 언급하면 직접 찾아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지금 심히 두렵습니다.
양동봉은 모르겠는데 이재율씨는 많이 들어봤지요. 뭐 자기가 수학 무슨 증명을 했다고 운운 하는데... -_-; 에휴
라캉은 "sqrt(-1) [허수단위]는 남성의 성기와 같다"는 말을 했다네요. 정확한 소스는 모릅니다만 대표적 skeptical 중 하나인 마틴 가드너에게 '미친 주장'이라고 열심히 밟혔습니다.
저도 2004년 까지는 라캉에 대해 아이추판다님이 지적하신 바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게 되면서, 제가 배웠던 심리학이 영-미의 정상심리학의 범주에 드는 협소한 것이 아닌가 라는 오해를 가지고 철학 등을 공부하려 노력을 하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쏘세지 친구들을 시작으로 소쉬르, 롤랑바르트, 레비스트로스, 푸코, 보드리야르, 지젝 등을 수박 겉핡기 식으로 공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라캉이라는 할아버지가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의 인식론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고 또 그에 대한 여러가지 해설 등이 매우 재미있게 읽힌다는 사실을 깨달아 최근까지 이전과는 견해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철학은 메타 학문이지만, 말씀하신 맥락은 협의의 의미에서 철학을 메타 학문으로 규정하는 경우, 즉 영미권의 분석 철학 등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 됩니다. 제가 앞서 언급하였듯이 라캉의 경우 그것의 인식론적 측면들이 많이 인용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말씀하신 내용은 라캉의 쓰임에 대한 비판으로는 조금 부적절한 측면이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라캉의 저서 등이 제대로 번역된 바 없지만 (제대로 번역할 수 없는 지경이기도 하고) 그가 사용했던 개념과 방법론 등이 이후의 몇몇 철학자들에 의해 여러가지 측면에서 전용되었고.. 개똥도 약에 쓸 데가 있다고.. 이런 저런 직관에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물론 저는 그렇다고 라캉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면박 주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고요. 다만 지젝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라캉과 프랑스 철학을 너무 미워 하시는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졸렬한 글을 적어 올립니다.
그럼 또 재미있는 포스팅들을 기대 하겠습니다.
시노조스 // "지금 그들이 검색 중입니다." o.o;;;
어부 // 아직까진 오지 않았군요. ㄷㄷㄷ
이상한 모자 // 라캉이 철학자기 때문에 심리학적 비판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치과의사인 양동봉도 물리학자들로부터 비판받을 이유가 없을 겁니다.
윤형 // 홍준기씨는 철학 전공 아닌가요.
이상한 모자 // 기독교 신학이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이 있다고 해서 기독교 신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라캉을 누가 어떻게 인용하든 그건 라캉에 대한 평가와 아무 상관없는 것입니다. 라캉에 대한 평가를 얘기하는 데 누가 그걸 어떻게 인용했는지는 왜 자꾸 언급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양 동봉은 물리학적으로 아무 의미없는 계산을 '제로존' 이론이라고 이름붙여 광고하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신동아에서 그를 취재해서 노벨상감이라고 보도를 했지요. 양동봉=라캉, 물리학=심리학, 신동아=프랑스 철학자들로 바꿔서 읽어보십시오.
1) 아이추판다님은 '라캉에 대한 심리학으로부터의 평가' 이외에도 '개별 학문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라캉'과 '인문사회과학쪽 사람들'의 '프랑스 철학에 대한 기이한 경외심'을 언급 하셨습니다.
2) 이는 라캉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언급을 넘어서 라캉과 그 주변의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는 학적 논의 전체에 대한 폄하로 받아들여 집니다.
3) 저는 그래서 라캉 이론이 인문사회과학에 적용되는 맥락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폭넓은 지평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고, 언급하신 것과 같은 논리로 그 맥락 전체가 폄하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4) 말씀하신 '양동봉의 예'는 지나치게 나이브한 비유로 받아들여 집니다. 프랑스 지식 사회가 한국의 신동아와 같은 주간지에서 라캉을 노벨상 감으로 보도하고 결국 해프닝으로 끝난 그런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라캉의 이론을 공부한 사람들로부터 뻗어나간 학문적 성취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유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5) '양동봉의 예'와 동일한 방법으로 비유를 들자면 '마르크스의 예'도 들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자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철학자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고 사회학자로 인정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이론들이 마르크스의 이론에 기초하고 있고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앤서니 기든스는 '제 3의 길'을 주창한 사회학자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조차도 마르크스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6) 언급하신 프로이트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심리학의 기초적인 정규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아주 단순화한 형태로 역사적 맥락에서 가르치는 경우는 있어도 오늘날의 유의미한 맥락을 가진 이론으로 가르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사용하시는 논리를 그대로 돌려드리면, 오늘날의 심리학적 논의에서는 프로이트나 라캉이나 양동봉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의미없는 학자들일 뿐이고 오직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추적하는 일과 소위 '인지적 치료'에 대한 방법론만이 의미있을 따름입니다.
7) 아이추판다님의 글을 늘 재미있게 읽고 있는 가운데, 저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어 올리는 리플입니다. 저는 아이추판다님에게 라캉을 '전도'할 생각도 없으며, 전도를 할 만큼 대단한 성직자도 아닙니다. 다만 인문사회과학을 하시는 분들도 나름의 학적인 이유에서 라캉의 이론과 이후의 맥락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조금 더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단 후기구조주의 라는것이 근대 '이성중심주의'를 무너트리기 위하여 시도한것이 초기에 잘못된 용법으로 많이 흔들렸지만, 부르디외를 중심으로 현대철학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더군요. 아마도 그런 영향을 봤을때 후기구조주의 학자중 새우깡 할아버지 위치는 나쁘진 않을겁니다.
허나 라캉은 분명 그가 잘못되게 행한 용어에 대한 잘못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점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라캉 후계자들도 문제가 많구요.
근데 심리학에서 프로이트를 최근 흐름상 인정하지 않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군요. 라캉도 인정을 하나요?
저는 심리학자들이 정신분석학의 임상적 쓰임, 그리고 그것의 효용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습니다. 심지어 앨런 소칼의 문제의식에도 동의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라캉이 '수학적',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앨런 소칼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책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말씀하신 내용 중 '수학적, 과학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는 라캉' 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라캉은 수학적 과학적 개념을 아주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다만 (앨런 소칼에 의하면) 아주 완벽하게 엉터리로 사용했을 뿐이지요.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를 '이성 중심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은 조금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는것 같습니다. 통칭 '포스트 모더니즘'의 철학 사조를 상정하시고 말씀하시는 것이면 이해가 갑니다만, 후기 구조주의를 특정지어서 말씀하실 때에는.. 조금 부적절한 측면이 있을것 같구요.
제가 남의 블로그에 이렇게 길게 뭘 달고 하는 법이 많지 않은데, 아이추판다님에 대한 일종의 팬심이랄까요. 그런게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이 이상 이 주제에 대해 리플을 다는 것이 아이추판다님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이 리플 이후로는 뭘 달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건승하십시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문제는 매우 다르긴 합니다. 호르크하이머 와 아드르노는 제가 보기에 구조주의 입장(계몽의 변증법)이라 치면 푸코나 데리다는 그 구조주의 혁명을 좀더 세부화 시켰다고 봅니다. 결국 후기구조주의가 역사적 사실과 맞물려서 보건데, 제2차세계대전 이후로 더 크게 확산된 것이므로, '파시즘'이라는 이성으로 만들어낸 괴물을 비판하기 위한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뭐 그렇다는 것뿐. 사실 새우깡이니, 포코이니, 뷁리다 이니 몰라도 먹고사는데는 지장없긴 없어요. ^^;
심리학의 입장에서, 심리학을 대상 학문으로, 철학을 메타 학문으로 놓고, 심리학에서 인정 못 받으니 철학적 맥락도 즐- 해 버리면 거기서 논의가 끝납니다. 이상한 모자 님 말씀대로 주류경제학에 영향이 없는 마르크스를 논의할 이유가 없다는 것과 동형의 논리구조죠. 기독교 신학이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신자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안셀무스나 데카르트의 신존재증명이 어디서 삑사리가 났는지는 모든 철학과 학생들이 (이건 영미철학 쪽 공부하는 학생들이 더 한 것 같더군요.) 눈에 불을 켜고 탐구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하물며 정신분석학은 그게 오류라는 것이 증명되지도 않았구요. 반증주의요? 그건 먼저 쿤이나 처리하고 와서 논의에 끼시죠.
철학도의 입장에서 매우 협소한 일부 프랑스 철학을 철학의 전부로 생각하고, 플라톤도 안 읽은 주제에 들뢰즈 읽었다고 잘난 척 하고, 이성중심주의가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타파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심히 짜증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근데 그건 한국에서의 유행의 문제이고, 그 사람들이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는 건 우리 세대에 판정내리기 쉽지 않은 문제죠. 분석철학 내에서도 요즈음엔 조심스러운 입장을 (물론 싸우기 싫어서이기도 하지만)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왜 조심스럽냐하면, 아이추판다 님이 한의학을 한두방 쳐서 날릴 때처럼 그들이 간단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죠. 기본적으로 분석철학자들은 대륙철학자들 저서를 안 읽은지가 오래됐거든요. 나름대로 그 방면에 관심이 많은 리처드 로티조차 그렇습니다. 소칼의 심정이 저도 이해가 가는 것이, 분석철학자들이나 인지과학자들이 가끔 전통적인 철학자들 얘기 끌어올 때도 맥락은 하나도 안 맞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 그들이 그 구절을 빌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챙겨야지 훈고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라캉조차도 자신의 수식을 비의적으로 활용했을 뿐이지 그게 진짜 수학적인 거라고 주장한 적은 없거든요.
라캉도 임상하면서 이 얘기하고 저 얘기하고 마구 지껄였던 사람이구요. 사위인 자크 알렝 밀레 등을 비롯한 후학들이 다시 임상하면서 말이 되도록 고치고 체계를 만들고 하면서 지금까지 온 겁니다. 그 사람들이 볼 때 미국 정신과 의사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약이나 먹이는 그런 사람들이죠. 정신분석학적 논의의 번성에서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환자치유의 문제에 있어서는 임상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는데, 그게 어째서 사회적인 비평활동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죠. 근데 지젝이 지금 그 짓을 하고 있는 거구요. 아주 재미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좀 철학을 날로 먹으려고 든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신분석학의 오류는 검증된 것도 제법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이 포퍼 말만 믿고 정신분석학을 배척한 게 아니에요. 그 연구 프로그램의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밀려난 겁니다. 심리학자들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정신분석학을 미워하겠습니까.
라캉의 경우는 좀 심한데 그의 "거울 단계" 개념은 심리학의 거울 실험을 가져다가 벌인 황우석 급의 사기극이에요. 그의 사위가 뭘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보기엔 황빠들이 줄기세포는 없어도 원천기술은 있다고 떠드는 것이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라캉은 유명한 철학자들이 인용해줬다 뿐이죠. 황우석도 이진경이 극찬을 했으니 우리도 이진경을 보아 눈감아주도록 할까요?
정신분석학자들이 미국 정신과 의사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약이나 먹이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만(물론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정신분석학의 치료 성적은 별볼일 없습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정신과 의사들이 나아요.
저는 철학의 문제는 관심도 없고 철학자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라고 보고요, 본문 첫째 단락에서도 말했지만 그 '기이한 관심'에 대해서는 뭐라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라캉의 경우는 다르죠. 그걸로 임상을 하겠다면 저도 학파 하나 만들어서 "경두개 전기자극"(영화 속에 나오는 전기로 지지기)이나 하고 다녀야겠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과학적 근거도 있고 몇몇 경우엔 효과도 있답니다.
그냥 둘 다 안 되면 아니고, 둘 다 취급할 수 있으면 취급할 수 있는 거지, 굳이 프로이트,융과 라캉을 구별하시는 의도를 모르겠어요. 정신역동적 접근법이라고 해봤자 그 동네에서 별 비중도 없을 텐데. 프로이트는 생물학주의를 좋아 했으니 구미가 당기는 면도 있겠으나 융은 정말 이해가 안 가는군요. 융이야말로 신비주의의 전형 아닌가요? (그래서 좋아하는 면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라캉이론이라는 건 프로이트 이론에서 생물학주의를 빼내고 구조언어학을 방법론으로 도입한 후 발전시킨 것인데요. 임상에 대한 1차원적인 해석 차원에선 프로이트주의입니다. 다만 2차적으로 해석할 때 끌어들이는 틀이 다를 뿐이죠. 그 틀이 구조언어학이니 당연히 심리학과는 아무런 접점도 없을 거라는 게 이해는 가는데, 그걸 가지고 사이비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 근거를 묻게 되고 이렇게 되면 골치아픈 과학철학의 문제로 직행합니다. 저로서는 아이추판다 님과 제가 이런 문제를 다룰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이진경은 죽었다 깨어나도 '유명한 철학자'가 될 수 없을 것이구요. 하긴 신동아가 프랑스 지성계가 되는 판국인데 그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저 자신이 임상의도 아니고 프랑스 학계를 대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처지도 아니지만, 그 경멸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여 몇자 끄적여본 것 뿐입니다.
그나저나 "경두개 전기자극"을 가지고 끄적거린 일본 미스터리 소설을 보다가 황망해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 정신분석적 치료의 기본은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인데, 인간을 전기적 자극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발상과 같은 층위에 놓고 설명하시다니 흠좀무입니다.
질문 자체가 이해가 안 가네요. 그럼 정신분석가들은 자기들끼리 학회라는 곳에서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성공 사례 발표와 실패 사례 발표하고 있지 않겠어요? 이유추정하면서요. 그것들을 주류 심리학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비판할 수도 있다고 생각되고, 그 자세한 논의에 대해 저는 아는 바가 없지만, 그들이 임상과 상관없는 탁상공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제게는 난해한 시각이군요.
그리고 논의에서 하나 빠뜨린 것이 있어서 부연하는데요. 아이추판다 님은 기본적으로 라캉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기 때문에 철학에서도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십니다. 철학은 메타 이론이라면서요. 이에 대해 저는 라캉의 경우 대상 명제가 심리학의 임상이 아닌 그들의 임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 사실을 부정하려면 라캉 뿐 아니라 전체 정신분석학을 깡그리 부정하는 쪽이 더 일관성있다고 말해온 것이구요. 트랙백으로 보낸 긴 글의 요지가 결국 그겁니다.
그런데 아까 떠오른 다른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이렇습니다. 출신성분이 정신분석학이면 무조건 대상명제를 임상에서만 찾아야 하는 걸까요? 학문의 역사를 보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방법론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방법론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엔 쓸모가 없었고,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널리 쓰였던 예들이 숱하게 많습니다. 가령 라캉 이론이 임상에서 쓸모가 없었다고 치자구요. 그렇더라도 이 글의 아이추판다 님의 논지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론이 다른 분야들에서 (뭐 가령 문학평론이나 영화평론 따위에서) 활용되었다면, 그때의 대상명제는 다시 그런 구체적인 평론 텍스트들이 될 터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라캉이 유행한 과정으로 볼 때, 라캉 모른다고 막장이라고 했던 그분이 라캉의 임상의로서의 유능함을 근거로 내세웠을 것 같진 않아요.) 그럼 여전히 라캉 이론은 메타 이론으로도 가능할 수 있는 거고, 아이추판다 님이 그의 발판을 부정하시려면 관심없는 분야에 접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거 원하지 않으실 테니까 그냥 다른 프랑스 철학자들 보는 것처럼, 소 닭보듯이 하는 게 현명한 일이 되겠죠.
"정신분석학의 치유가 대체적으로 나쁜 평판을 얻어가고 있는 시대에, 프로이트의 언어가 영화평론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 언어에 익숙한 이들의 지지를 받는, 라캉 연구서를 망명정부의 준칙으로 사용하는 지식인"
뭐 정확한 워딩은 아니고 제 기억입니다만, 하여간 그래요. 저는 아이추판다 님 논지의 과학주의가 너무 나아갔거나, (프로이트와 라캉을 분리하는 부분에 있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 라캉이나 그의 신도들 자체를 옹호하는 쪽은 아닙니다. 제대로 된 번역서도 안 나온 학자에 대해 빠가 있다는 것이 후안무치한 일이라는 아이추판다 님의 언급은 전적으로 올바르죠. 차라리 더 적나라하게 지젝을 안 읽으면 막장이라고 하든지.
저는 바로 윤형님이 말씀하신 - 그러나 아는 바가 없다고 하신 - '자세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한것입니다. 한국 라캉학회에 가도 가입자 승인이 떨어지기 전에는 논문을 받아볼수가 없더군요. 혹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루트를 알고 계시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herefore, Andrew Wiles`s FLT proof is practically worthless.
Sincerely yours. Jae Yul Lee and You Jin Lee.
appendix PDF files
http://blog.empas.com/leejaeyul5/,
http://cafe.naver.com/leejaeyul.cafe,
http://cafe.daum.net/leejaeyul5
2008.10.14. 심사 독촉에 대하여, 편집담당이 2008.10.28. 아래와 같이 연락주셨습니다.
2008.06.16. C08-064 Fermat's Last Theorem proof 논문으로 접수시킨, 우리의 페르마정리 증명은 간명 완전무결합니다.
수학 증명의 진정한 가치는 진위 판별이 분명함에 있는 바, 수학사에 기록된 Elliptic curve에 관련된 Andrew Wiles의 FLT proof 논문은 난해한 추측으로서, 그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공익법인 KMS는 국제저널로서 공정한 조치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4색 문제. 페르마정리 증명. 논문 저자. 이재율. 이유진 드림.
------------------ 아 래 ------------------
발신: "KMS_paper" <paper@kms.or.kr>
수신: "재율 이" <leejaeyul5@yahoo.co.kr>
제목: Re: 논문 심사 적극 조치
날짜: Tue, 28 Oct 2008 17:44:47 +0900
이재율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 대한수학회 논문집에 투고하신 논문은 현재 심사 중입니다.
심사위원님께 심사기간을 2개월로 하여 요청하고 있지만, 심사위원의 개인사정에 따라서 통상 그 이상이 걸리는 실정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심사기간이 2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사위원님께 조속히 심사결과를 알려달라고 요청을 하겠습니다.
대한수학회논문집 편집담당